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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재봉의 문학으로] ‘은평클럽’을 아시나요?

등록 2016-04-21 21:16수정 2016-04-21 21:16

‘은평클럽’을 아시는지? 서울 은평구에 살던 중견 문인들이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꾸린 친목 모임이었다. ‘등단 20년 이상에 은평 거주 15년 이상 현역’이라는 제법 까다로운 조건이었음에도 자격 요건을 갖춘 이들이 많았다. 시인 성찬경 박성룡 김시철 황명 김종해 허영자 이근배 김지향 정벽봉, 소설가 박연희 서기원 구혜영 최미나 박기원 박용숙 김지연 염재만 이호철, 평론가 이선영 정규웅 등 20명이 정회원이었고, 역시 은평에 살던 권오운 신달자 김종원 김병익 같은 문인들도 이따금씩 모임에 나왔다. 90년대 중반 이후 회원들이 일산과 분당 등으로 흩어지면서 모임은 흐지부지됐지만, 한창때에는 신문과 방송에도 소개되고 구청장도 참석할 정도로 성가를 올렸다.

19일부터 6월19일까지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국문학 속의 은평’전에서 은평클럽 회원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 전시에는 이들뿐만 아니라 은평구에 거주했거나 연고가 있는 문인 130여명의 작품 초간본 700여권이 나왔다. 특히 1948년부터 전쟁 무렵까지 은평구 녹번동에 살았던 정지용의 <정지용시집>(1935) <백록담>(1946) <지용시선>(1946) <문학독본>(1948)을 비롯해 1930~50년대에 발행된 희귀 초간본 10여종도 아울러 만날 수 있다.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장은 문화재 전문가답게 ‘문학 은평’의 출발을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 시대로까지 끌어올린다. 최치원이 일컬었던 화엄 10찰 중 망실된 마지막 사찰 청담사 터가 은평뉴타운 인근 진관동에서 발견되었으며, 고려 때 창건돼 임진란 때 의병 3천을 양성했던 삼천사, 그리고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을 위해 독서당을 마련했던 진관사 등이 그 뿌리를 이룬다는 것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호철과 최인훈 두 거장의 코너가 우선 눈에 들어온다. 공교롭게도 함남 원산 출신 월남민으로 분단 문제를 천착해온 두 작가는 나란히 은평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았다. 이호철은 1967년 결혼과 함께 불광동으로 들어와 지금까지 50년째 살고 있으며, 최인훈도 70년대에서 90년대에 걸쳐 불광동과 갈현동 등에서 오래 생활했다. 원산고 선후배이기도 한 두 작가는 이곳에 살면서 <소시민> <남녘사람 북녁사람>(이상 이호철),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화두>(이상 최인훈) 같은 문제작을 썼다. 전시장의 또 다른 축은 김광주·김훈 부자 소설가다. 언론인이기도 했던 김광주는 1969년 북한산 자락 진관동에 만들어진 기자촌에 입주해 살다가 1973년 생을 마감했다. 그 아들인 김훈은 결혼 이듬해인 1975년 연신내에 신접살림을 꾸렸으며 불광동 등 은평구에서 오래 살다가 90년대 말 일산으로 옮겨 갔다. 전시에는 빠졌지만 소설가 김성동도 불광동 시절 김훈 동네 옆골목에 살면서 장편 <집> 등을 집필했다. 이들 말고도 구중서 김원일 노향림 박범신 유호 장용학 조정래·김초혜 부부 등 은평을 거쳐 간 여러 문인의 자취를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지금 은평에는 터줏대감이라 할 이호철 이근배 두 원로와 기자촌 시절부터의 주민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건재한 가운데 권지예 김경주 김애란 김태용 유채림 이원 정아은 천운영 황현진 등 후배 문인들이 새로운 주민으로 편입되었다. 북한산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상대적으로 싼 집값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어느 맑은 날, 북한산 아래 허름한 술집에서 이호철 이근배 같은 원로와 김경주 김애란 같은 후배들이 막걸리 잔을 나누며 21세기형 은평클럽 모임을 하는 상상을.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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