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성장하지 않아도 우리는 행복할까?>
세르주 라투슈 지음, 이상빈 옮김
민음사, 2015
<성장하지 않아도 우리는 행복할까?>
세르주 라투슈 지음, 이상빈 옮김
민음사, 2015
동네 평생학습관에 갔다가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을 소개하는 “이런 정당도 있어요”라는 총선시민교육 안내문을 보았다.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다. 노동당과 녹색당은 원외 정당이므로 정의당 입장에서는 같은 규모로 취급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노동당과 녹색당도 이유는 다르겠지만, “우린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政)이 다르면, 당(黨)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필요할 때 연대하면 된다. 사실 이 세 당 사이의 차이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차이보다 크다.
나는 현실정치에 관심이 많고 매우 전략적으로 투표하는 유권자다. 정권교체는 사회 전반의 세력교체다. 새누리당의 승리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천만다행으로 이런 나라에도 정당투표제가 있어 비례대표 선출은 골치가 덜 아프다. 내가 사는 지역은 1여4야의 상황, 내내 고민이다.
어제 자주 가는 중고서점 사장님에게 “정당투표는 녹색당 어때요?”라고 말을 걸었더니, 옆에 있던 청년이 “저는 정의당 찍을 건데요”라며 나를 째려보았다(?). 나는 (“학생에게 권한 거 아니거든요!”라고 하려다가) “예, 저도 정의당을 지지합니다”라고 품위(?) 있게 말했다. 후보투표든 정당투표든, 세 당 모두 20대 국회에 최대한 진출하기를 기원한다. 세 정당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 틈새를 개척하면 된다. 어떻게 다르냐고? 정확히 말해, 두 정당은 진보정당이지만 녹색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
내가 늘 강조하는바, 한국 사회에서 진보(progress)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경제 성장, 민주 발전을 의미한다. 좋게 말하면, 계몽주의 혹은 상식조차 진보의 범주에 포함된다. 근본적으로 서구와 다른 자본주의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지만, 파이부터 먼저 키워야 한다는 논리를 볼모로 대다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발전주의는 새로운 야만이다. 이런 발상의 진보는 재개념화하거나 폐기할 때가 되었다.
우리 사회는 진보/보수, 여/야, 좌/우가 갈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적 입장이나 생활 방식은 큰 차이가 없다. 외모주의, 학벌, 국가발전 개념, 소비문화, 자녀교육, 표절까지 참으로 ‘한국적’이다. 일부 진보 인사들의 근거 없는 도덕적 우월성, 권력 지향은 일반 대중보다 더 쉽게 은폐된다. 최근에는 ‘성형수술한 에코페미니스트’도 등장했다(의료 폐기물). ‘그들만’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그렇다는 얘기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세르주 라투슈는 나의 말더듬과 자기검열이 답답했는지 명료하게 말한다. “성장지상주의를 벗어나는 것은 반자본주의 프로그램이고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다. 그 운동은 우파일까 좌파일까. 차후 정치적 이원성은 ‘우파’와 ‘좌파’의 구분이 아니라 ‘생태학적 관점을 존중하는 이’와 ‘포식자’로 나뉠 것이다”(114쪽). 세르주 라투슈의 <성장하지 않아도 우리는 행복할까? - 세상을 바꾸는 탈성장에 관한 소론>(2권)은 <발전에서 살아남기 - 신자유주의를 넘어 대안 사회 건설까지>(1권)에 이은 책으로, 유네스코의 후원으로 만들어졌다. 구체적이고 가볍고(책 두께) 쉽고 재미있다.
저자에 의하면, 자본주의와 반자본주의 모두 자연을 동원한다. 좌/우파는 차이보다 공통점이 많다. 공통점의 핵심은 대상화다. 인간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연결을 모두 끊고 자기 외부를 만들었다. 착취와 규정으로 사회적 약자와 자연을 통제하는 사고방식. 이것이 포식(捕食, 飽食)이다.
자기 존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인간이 대상으로 삼는 ‘그들’에게 ‘우리’는 누구일까.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니체를 경험(?)했다. 학급일지를 쓰는 서기였는데, 담임선생님이 생물 담당이어서 과학실에서 선생님을 기다리곤 했다. 다양한 초파리 표본을 관찰했는데 아무리 봐도 차이가 없어 보였다. 나는 깨달았다. 초파리가 말했다. “너희가 볼 때 우리가 똑같이 생긴 것 같지? 우리가 볼 땐 너희도 그래.”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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