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박정희 대통령 연설집-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
신범식 편, 한림출판사, 1968
<박정희 대통령 연설집-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
신범식 편, 한림출판사, 1968
새누리당 공천극에 등장한 최고의 대사는 조원진 의원(대구 달서병)의 “헌법보다 인간관계”고, 명장면은 김무성 대표의 서울-부산을 오간 당무 처리가 아닐까. 보수 언론도 당황했는지 이 모든 사태의 진원지가 대통령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권력을 추구하거나 권력욕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그의 권력 개념은 한계가 없다. 최고선인 국가가 빙의된 존재가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무(國巫) 파동은 우연이 아니었다.
한편 그의 아버지는 우리 몸에 붙은 현대사의 유령(haunting)이다. 2016년 국회의원 후보 공천 과정은 구한말로부터 당도한 역사의 통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화기의 모욕, 식민과 분단, 전쟁의 폐허 속에서 뒤늦은 맹목적 근대화는 한국인에게 사는 이유가 되었다. 발전과 성장은 한(恨)이자 불문의 역사적 과제였고 이제 우리는 식민지에서 ‘짝퉁 제국주의’가 되었다.
박정희는 영웅일 수밖에 없다. 그는 건국을 약속했고 스스로 발전의 표상이 되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박정희의 힘은 고생과 배고픔에서 벗어나고픈 대중의 열망에서 나왔다. 물론 완벽한 착각이다. 이제 경제성장은 빈부격차와 실업을 의미할 뿐이다. 그럼에도 ‘민초’일수록 ‘TK’일수록, 부녀 대통령을 사랑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은 경제를 ‘발전’시키고 야당은 경제를 ‘민주화’한다니, 어느 편이 더 설득력이 있을지 걱정이다. 부자 지상주의를 자성하는 발상의 전환이 없다면 선거든 사회운동이든 우리는 희망이 없다.
이는 근본적으로 “근대화=서구화”를 극복하지 못한 탈식민 문제다. 한국의 일본 콤플렉스는 일본이 비서구사회에서 유일하게 서구를 초과 달성하여 맨 앞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에겐 언제나 앞에 선 자(선진국)가 있다. 쫓아도 쫓아도 닿을 수 없는, ‘추격’(catch up) 발전주의다. 그마저도 ‘가시밭길’은 ‘끝없는 길’로 변했다. 더 살기 힘든 시대다. 인간성과 인간관계는 파괴되고 땅, 강물, 공기는 사라지고 있다. 따라잡아야 한다는 강박, 만성피로의 인생이다. 게다가 작은 성취조차 개인에게 분배되지 않는다. 국가(대통령) 앞에서 “자기 정치”는 배신이기 때문이다.
<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는 박정희 집권 초반부터 4년간, 당시 신범식(申範植)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 연설문을 엮은 유명한 자료다. 유신 이전 ‘혁명’ 정신이 살아있을 때여서인지 사명감에 몸부림치는 열정 가득 찬 문장과 어록이 ‘감동’을 준다. 좌절과 정치혐오에 지친 지금 유권자들은 그 의욕이 부러울 지경이다.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를 희구한다”, “이견에 대한 아량은 자유 인민들의 소중한 생활양식이며 재산이다”, “상도의(商道義)와 경제논리”, “어둠을 탓하지 말고 촛불을 켜 들자”. 박근혜 대통령에게 재독을 권하고 싶다.
책 제목은 1967년 2월2일 민주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 수락연설, “멈출 수 없는 전진”(135~138쪽)의 일부다. “우리는 조국 근대화 작업의 제2단계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 작업은 이미 착수했으며, 우리의 전진은 이미 개시되고 있습니다. 이 작업은 촌각도 중단할 수 없으며, 이 전진은 잠시도 멈출 수 없습니다. 승리하는 자는 중단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중단하지 않고 계속합시다! 그리고 전진합시다. 우리 조상들이 이루려다 못 이룬 과업을 우리 손으로 이룩합시다!”(현재 맞춤법으로 고침)
1등이 아니면 중단 없는 전진은 영원한 진리가 된다. 역대 대통령 중 이 진리의 최대 수혜자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통치자의 고정 지지율이 40%로 보장된 사회에서 어느 누가 무슨 일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중단이냐 아니냐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본질적으로 옳은 쪽은 없다. 문제는, 중단하지 않고 계속 전진해야 할 때다. 이 경우에는 반드시 골인 지점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달리다 죽거나 죽을 때까지 달려야 한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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