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숨통이 트인다 - 녹색/당/신의 한수>, 장서연 외 지음
포도밭, 2015
<숨통이 트인다 - 녹색/당/신의 한수>, 장서연 외 지음
포도밭, 2015
‘저 사람은 지금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까’가 궁금한 이들이 있다. 자기는 잘났거나 억울한데 남이 보기엔 ‘사회악’, ‘걸어 다니는 재앙’인 사람들을 본다. 자주 본다. 자신이 무슨 일을 왜 하는지 매순간 놓치지 않는 것,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자세가 직업인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이나 종교인, 지식인은 성찰이 업무이다. 이들의 생각하지 않음은 죄악이다.
예전에 현대사 관련 글을 쓰기 위해 출마를 앞둔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용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다. 어떤 책들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구술, 정리”라고 표기한 책은 훌륭하다. 대필을 자서전이란다. 내용은 과장, 겸손, 자기 자랑 뒤범벅에, 나라와 국민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종이가 아까울 뿐 할 말은 없다. 문제는 아무리 읽어도 그들이 왜 정치를 하고 싶은지 알 길이 없다는 점이다.
<숨통이 트인다>는 녹색당 활동가 11명이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뒤표지 문구)를 적은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두 가지다. 일단 글쓰기의 기본 목적을 달성했다. 정치 참여 이유가 솔직, 분명, 구체적이다. 둘째, 내가 아는 한 지금 출판된 책 중에서 이만큼 정확한 대한민국 현장 보고서가 없다. 실천하는 전문가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현실에 대한 나의 생각’은 필자의 태도와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글쓰기 주제다. 무례와 곡해, 요약의 폭력성을 무릅쓰고 이들이 정치를 하는 이유를 옮겨본다.(여기 발췌한 내용이 이들 글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실제 전기는 오히려 남아도는데 핵발전소와 석탄 화력 발전소를 계속 짓고 있어서”(황윤), “야생동물이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는 로드킬은 도로 밀도가 지나치게 높은 사회이기 때문에 그리고 남녀의 임금 격차가 10:6인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장서연), “우리의 식량 자급률이 23%에 불과하고 쌀을 제외하면 5% 이하이기 때문에, 전기 생산에서 재생 에너지 이용 세계 평균은 20%인데 한국은 1.9%에 불과해서”(한재각).
“정치가 자기 성취와 사적 이익의 각축장인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믿기 위해”(이계삼), “16대 국회 청원안 접수 건수는 765건인데 채택은 4건, 19대는 219건 중 2건인 현실에서 시민의 입법권을 위해”(김은희), “한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최소한 먹고살 수 있는 기본소득권을 위해”(김주온). 매월 4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재원 마련 방안이 있다(121쪽).
“내 생애에 반드시 낙동강이 흐르는 것을 보기 위해”(구자상), “우리는 독일보다 5개월 이상 더 일한다, 독일의 연간 노동 시간은 1371시간인데 한국은 2285시간이어서”(남우근), “주택 보급률은 100%가 넘는데 계속 집을 짓고 있다, 국내 주택의 평균 수명은 27년인데 미국은 72년이다”(신지예). 우리 동네는 일년 내내 공사 중이다. 내게 봄은 흙먼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단독주택을 최소 8가구 이상의 다세대로 바꾸니 동네가 어떻게 되겠는가. “미세먼지의 50~70%가 국내에서 생성된다”(이유진).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의 지적은 평소 잘난 척이 몸에 밴 내게 일격을 가했다. 그는 개인이 버는 소득의 90%는 사회공동체의 공통 자산 덕분이라고 말한다.
녹색당의 당비 납부율은 전체 정당 중 최고이며 여성 당원의 비중이 가장 높다. 나는 당비만 내는 당원이지만 녹색당은 집에서도 24시간 정치를 할 수 있는 민생 정당이다. 1인 가구여서 가능하겠지만 나는 냉장고, 화장품, 핸드폰, 드라이기, 다리미, 자동차, 샴푸, 냉난방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의류, 신발 등은 구입하지 않는다. 대단한 철학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최대한 축소된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 이런 생활 습관이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아니 아예 믿지 않는 이 독재사회에 저항하기 위해서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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