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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재봉의 문학으로] ‘개저씨’ 문학론

등록 2016-03-24 19:20수정 2016-03-24 19:35

지난해 문학계를 뜨겁게 달군 표절과 문학권력 논란에서 비판론자들이 특히 강조한 것은 ‘비평 정신의 실종’이었다. 표절을 두둔하고 작품의 가치 평가를 왜곡하는 주류 비평가들의 그릇된 권력 행사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확산됐다는 논리였다. 주요 문예지가 편집위원진을 쇄신하고 편집 방향에도 변화를 모색한 것이 그런 지적과 무관하지 않았다. 실종된 비평 정신을 회복하면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고 독자의 신뢰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합의’에 비판론자들과 문단 주류는 가까스로 도달한 듯했다.

그러나 여기, 그렇게 합의한 양쪽을 싸잡아서 호되게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 둘 모두, 이름도 모욕스러운 ‘개저씨 문학’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문화과학> 봄호에 실린 젊은 문화연구자 오혜진의 글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이 그 출처다.

오혜진의 글은 ‘586세대’로 대표되는 기성 문학관과 ‘젊은 독자들’의 선명한 대립 위에 서 있다. 그 대립을 불가피하게 하는 것은 문학을 대하는 태도다. 오혜진이 보기에 비평 정신의 회복을 주장하는 비판론자들은 ‘문학이라는 순정한 대상’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주류 문학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문학은 ‘수호’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야말로 21세기 독자에게 20세기 계몽주의적 문학관이 내려준 마지막 교훈이 아니었던가.”

문학이 ‘수호해야 할 신성한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을 먼저 내놓은 것은 시인 심보선이었다. 그는 지난해 6월 열린 표절 및 문학권력 관련 토론회에서 ‘국문학’이라는 신성한 대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문단 주류와 비판론자들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표절 및 문학권력 논란의 배후에 비평의 왜곡이 있으며 그 해법 역시 비평을 바로잡는 데 있다는 ‘비평중심주의’에 그는 반대한다. “자신의 전문적 역량으로 한국문학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확고한 비평적 믿음 자체를 반성해야 한다.” 오혜진의 글은 심보선의 이런 논지를 더 적극적·극단적으로 이어받는다.

오혜진이 ‘개저씨 문학’이라 부를 정도로 심각하게 여기는 주류 한국문학의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여성 혐오, 약자 및 소수자 혐오, 세계 시장 진출과 세계 문학상에 집착하는 후진국 콤플렉스, 가족·모성애 같은 전통 질서 수호에 골몰하는 폐쇄적 보수성, 무차별적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교조주의적 ‘꼰대질’, 오락성의 현저한 결여…. 이렇듯 다양한 혐의 중 어떤 세목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지 않겠지만, 그는 ‘젊은 독자들’의 판단이라며 논지를 밀어붙인다. “이제 ‘K문학’은 시장패권주의와 결합된 한국문학의 부정적 성격 전반에 대한 종족화를 경유함으로써 ‘한국문학’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조롱의 기표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21세기의 독자들이 ‘개저씨’들의 K문학/비평 복권에 냉담한 이유다.”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개저씨 문학’에 대한 대안으로 오혜진이 제시하는 것은 팬픽과 웹툰, 에세이와 르포, 장르문학 등 그간 주류 문학이 외면하고 차별해온 하위 장르들이다. 젊은 독자들의 관심과 요구에 부합한다는 근거에서다. 그러나 한국문학이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그는 본다. 그렇다면 결과는? “이제 예언컨대, 젊은 독자를 잃은 한국문학/비평은 장르화된 방식으로만 겨우 존재하면서 영원히 ‘그들’만의 은어, 혹은 방언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애도의 대상도 되지 않을 것이다. K문학/비평이 없는 세계는 축복이며, 거기서 21세기의 독자들은 압도적인 행복을 누리기 때문이다.” 무섭고 아픈 예언이다.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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