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생명권 정치학>, 제러미 리프킨 지음, 이정배 옮김
대화출판사, 1996
<생명권 정치학>, 제러미 리프킨 지음, 이정배 옮김
대화출판사, 1996
생활의 반려자가 인간에서 동물로 확대되면서 동물권과 인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아졌다. 기아로 죽어가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활발한 문명 활동으로 동물을 멸종시키는 인간이 있다. 어쨌거나 문제는 인간이다.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이 인권 의식이 있을 리 없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연쇄살인범에 관한 연구를 보면 그들의 첫 번째 피해자는 대개 키우던 동물이나 가족(여성)이다.
<생명권 정치학(Biosphere Politics)>은 ‘소유, 노동, 육식의 종말’ 시리즈로 유명한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 사상의 출발점이다. 그는 철학, 사회학, 문학, 경제학에 두루 능하지만 ‘경제학자’에 작은 따옴표를 쓴 것은 “이것이 진짜 경제학이다”라는 인식이 확산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의 성장을 경제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환경을 죽이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들이 무서운 이유다. 경제를 재개념화한다면 녹색당이야말로 경제를 살리는 당이다.
이 책의 원제는 주제를 함축하고 있어서 중요하지만 번역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바이오(bio)’는 적절한 우리말을 찾기 어려운 단어 중 하나인데, ‘생(生)’도 이상하고 ‘생명’도 어색하다. 다행히(?) 핵심은 ‘권(sphere)’에 있다. 권(圈). 범위, 분야, 행성 등의 뜻이다. 여성주의에서 공사 영역의 성별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이분법을 비판할 때 사용하는 그 ‘영역’이다. 권역, 대기권, 오존층(ozono/sphere) 등의 단어에서도 어감을 짐작할 수 있다.
요약하면, 모든 존재의 문제를 ‘권리’로 접근하지 말고 상호 연결, 온전한, 총체적인 의미의 ‘권(圈)’으로 해석하자는 의미다. 리처드 로빈스의 <세계문제와 자본주의 문화>와 함께 인문학 입문서로서 최적이다. 깊은 사유는 저절로 넓고도 쉬운 이야기가 되는 법. 두 책은 그 모범을 보여준다.
생명권(生命圈)은 경계 없는 구체(球<4F53>)의 사고다. 근대에 이르러 인간은 자신을 객관화, 상대화하는 능력을 거의 상실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이 행성에서 인간은 개체수나 생명과 생태의 질에 있어서 가장 보잘것없는 그리고 끔찍한 존재다. 다행스러운 점은 인간은 잠시 지구에 살고 있을 뿐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환경운동 구호 중에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원전에 반대한다”, “인간은 후대로부터 지구를 잠시 빌린 것이니 지구를 완전히 부숴버리지는 말자(‘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오역됨)”는 논리는 틀렸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가 아니고 현재 나를 위해 원전에 반대해야 한다. 이 구호는 여전히 인간이 지구를 관리하고 있다는 발상에서 나온 오만이다. 지구가 인간의 것이 아닌데 누가 누구에게 지구를 ‘물려주고 말고’ 한단 말인가.
우리나라 청소년의 장래 희망 2위가 건물 임대인이라고 한다. 임대인이 파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시간이다. 중세인들은 지주나 고리대금업이 부도덕한 직업인 이유를 자기 것이 아닌 하느님에게 속한 시간을 파는 횡령꾼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45쪽). 지금은 다르다. 이후 인간은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 개념을 새로 만들었다(이런 지식이 요즘 유행하는 ‘인문학’이다).
우리는 “소가 사람을 잡아먹는 사회에 살고 있다. 사람의 식량인 옥수수와 콩은 수출용 쇠고기가 먹고, 가난한 지역 사람들은 굶어죽는다”(87쪽~). 알파고는 인공도 지능도 아니다. 인간이 만든 비대한 인간일 뿐이다(초대형 컴퓨터 2000대!). 이세돌 9단 앞에 앉아 있던 이는 알파고가 아니라 구글 딥마인드 개발자 아자 황이라는 사람이다. 그가 왜 앉아 있겠는가. “촉감 없는 사회”(328쪽~)를 보라.
이 책에도 오류는 있다. “지구적 사유와 지역적 실천”(418쪽)은 지배자의 언어다. 지구와 지역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곳이 지역이다. 지구와 지역의 구분은 기존의 ‘전체’와 ‘부분’, 그 위계의 반복이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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