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작고 위대한 소리들>, 데릭 젠슨 지음, 이한중 옮김
실천문학사, 2010
<작고 위대한 소리들>, 데릭 젠슨 지음, 이한중 옮김
실천문학사, 2010
몸, 가슴, 골치….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는 시대다. 내 친구 둘은 증상이 상반되는 질병을 앓고 있다. 한 사람은 우울증이고 한 사람은 공황장애다. 전자는 죽고 싶어 하고, 후자는 죽을까봐 두려움에 떤다. 대개 건강 약자를 사회적 부담으로 생각하지만 아픈 이들은 활동량이 적기 때문에 ‘민폐’도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계통의 환자에 대한 편견,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비정상, 위험한 사람”이라는 통념은 아픈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둔갑시킨다.
하지만 실제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사람은, 비정상 사회의 정상인이다. 지나치게 열심히 사는 사람, 무한 경쟁이 생존의 조건이라고 확신하는 사람,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기에 심신이 안정된 이들. 이들의 삶은 활기, 생명력으로 미화된다.
누구나 사회가 원하는 모든 정상성을 수행할 수 없다. 정상성의 권력은 이 희소가치에서 온다. 자신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할수록 정상성을 추구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오랜 논쟁거리지만, 그것은 권력이 정하는 임의적인 것이다. 사회가 건강하다면 나쁜 사람이 비정상이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제, 무엇이 선(善)인가라는 고뇌는 끝났다. 악당의 법칙(=광기)이 정상으로 간주되는 사회에서는 ‘힐링’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네 멋대로 써라>, <약탈자들> 등의 저자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미국의 작가 데릭 젠슨의 1995년작 <작고 위대한 소리들>(Listening to the Land)은,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남들 사는 대로 사는 이들을 위한 글이다. 젠슨이 생태주의 시각의 신학자, 여성주의자, 심리학자, 아메리카 선주민 등 다양한 분야의 지성들과 나눈 대담집으로 현대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압축되어 있다. 부제는 ‘자연, 문화, 에로스에 관한 대화’다.(한글판은 선별하여 엮은 것이다. 완역본을 기대한다.)
그중 “정상성의 광기”(The Insanity of Normality)는 대담자 중 한 사람인 아르노 그루엔(Arno Gruen)이라는 의사의 저서인데, 책 전체의 논지를 대변한다(218쪽). 그가 논하는 정상성의 광기는 자본주의 사회의 불가피한 사회성인 ‘지나친 외부 지향성’을 말한다. 개인보다 조직 중심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힘을 휘두르는 이들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광기. 이런 사회는 변화되어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가능한 한 광기에 적게 연루되는 삶이 제정신을 지키는 방도가 아닐까.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주제는 ‘최소한의 삶’이다. 통찰, 아름다움, 반전으로 빛나는 구절을 힘들게 골랐다.(괄호 안은 내 생각)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배움을 사랑(철학!)하는 사람인데 도시와 달리 나무는 나에게 아무런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 인류는 소크라테스 때부터 잘못됐다.” “지속 가능한 사회는 인구 억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저출산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발전주의가 민주주의로 오역된 우리 사회의) 진보는 신화다. 실제로 사회는 진보하지 않으며 변할 뿐이다.” “가나의 국어에는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없다.” “자기 영혼을 되찾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상심하는 것과 사랑에 빠지는 것, 그런데 이 둘은 언제나 함께 있다.” “자기 경계의 투과성을 인식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 “여성은 성애를 주로 쾌락을 나누는 행위로 보는데 남성은 힘의 표현으로 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인 행동은 가만히 있는 것이다.(평소 나의 신념을 게리 스나이더가 표절한 것임^^. 단, 우울증 환자는 빼고)” “환경운동가들은 기술의 발전에 대해 더욱 자신과 싸움을 벌여야 한다.(앱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지경이다. 인류의 7분의 1 이상이 물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스마트폰의 진화가 그렇게 중요한가? 우리 녹색당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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