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반짝이는 박수 소리>, 이길보라 지음
한겨레출판, 2015
<반짝이는 박수 소리>, 이길보라 지음
한겨레출판, 2015
나의 일상적 고민이자 공부 주제는 질병과 장애의 경계다. 몸의 불편과 고통은 비슷한데, 어디까지가 장애이고 어디까지가 질병일까. 낫지 않은 질병은 장애인가. 이는 장애 내부의 차이가 장애/비장애의 차이보다 크기 때문에 발생하는 ‘차이의 정치’의 좋은 예다.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육체적 고통은 6급 장애인보다 ‘더 장애인’일 수 있다. 그렇다면 장애란 어떤 상태인가, 누가 정의한 것인가. 일반화가 불가능한 영역, 타인의 고통에 대한 윤리, 몸(=이성)의 모든 이슈. 장애는 철학의 시작이다.
나는 만성 지병이 있는데 증상 중 하나가 소음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외출할 때마다 귀마개를 가지고 다닌다. 두통이 동반된다. 대화, 차량, 음악에 따라 반응 정도가 다양하고 일관성이 없다. 심할 때는 옆집 티브이의 야구 중계, 윗집의 핸드폰 진동 소리까지 들린다. 나의 정체성 중 하나는 장애인이다.
성별, 장애, 외모의 위계는 몸에 대한 사회적 해석이다. 의학과 인식의 변화에 따라 범위가 달라진다. 청각장애인 커뮤니티에서는 ‘장애’ 대신 ‘농인’과 ‘청인’으로 구별한다. 농(聾)문화와 청(聽)문화는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차이일 뿐이다. 농인만의 농문화가 있고 수어(手語)라는 고유한 언어가 있다.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는 음성 언어에서만 가능한 표현이다. 수어에서 박수는 두 팔을 들어 손을 반짝반짝 흔드는 고요한 행위다. 박수 소리는 소리로 환원되지 않는다. 수어의 표현력은 두 눈 맞추기, 몸짓, 얼굴 표정 등 음성 언어보다 훨씬 풍부하다(190쪽).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 청년의 이야기다. 코다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란 청인을 말한다. 영화감독이자 뛰어난 글쟁이기도 한 저자 이길보라는 부모 성을 함께 쓴다. 그녀는 농인 이상국과 농인 길경희의 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과 분노, 결의에 벅찼다. 어쩜, 인간이 이렇게 훌륭하게 잘 성장할 수 있을까, 그녀의 부모는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마치 그녀가 내 딸인 듯 감격했다. 우리 엄마도 나를 이렇게 생각하셨을까.
농인인 부모가 겪는 불편과 서러움, 어딜 가나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처지, 부모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 엄마를 보살펴야 하는 시간과 자기 성장의 갈등. 모두 내 이야기 같았다.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그녀는 감독과의 대화(GV)를 준비한다. 나도 좋아하는 배우 권율도 참석한다. 정신이 없다. 그런데 상황이 궁금한 엄마는 계속 문자를 보낸다. 그녀는 평생 엄마의 유일한 통역자였다. 엄마와 싸운다(235~240쪽).
그녀는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아마추어지만 절대로 GV때 아마추어 감독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 기시감.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외쳤다. 왜 보라씨 말고 다른 사람들은 수어를 안 배우는 거야! 우리 집과 똑같다. 나는 바빠 죽겠는데 엄마는 나만 찾았다. 할 일은 많고, 엄마를 사랑하고, 씩씩하게 보여야 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딸들은 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페미니스트지만 타인이 나를 페미니스트로 규정할 때는 분개한다. 저자는 훌륭한 코다지만 세상이 그녀를 코다로 가두려 한다면 같이 싸울 것이다. 자기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소수자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코다, 여성 모두 부분적인 정체성이다. 그것도 ‘우리’가 정한다. 그녀가 예술가로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기를 바란다.
평소 내가 추천하는 여성학 입문서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손끝으로 만나는 세상> 등 주로 장애 관련 책이다. 농인은 외국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이고 장애는 국경선이다. 문제는 장애가 아니라 정상성이다. 추천서 한권이 더 생겨서 기쁘다. 특히 세상 안과 밖을 넘나들고자 하는 10대, 20대에게 권한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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