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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선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등록 2015-12-18 19:22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크리스마스 선물”, <마지막 잎새>, O. 헨리 지음
이계순 옮김, 청목, 1996
O.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다시 펼치니 머리가 아플 정도로 다른 이야기다. 이렇게 짧은 분량에 이토록 생각할 거리가 많으니 새삼 문학과 철학의 경계가 따로 없구나 싶다. 대단한 장편(掌篇)이다. 스물두 살의 가난한 부부 짐과 델라. 사랑하는 이들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팔아 상대에게 가장 ‘필요한’ 성탄절 선물을 한다. 델라는 머리카락을, 짐은 시계를 팔지만 그들이 받은 선물은 이제는 소용없는 머리빗 세트와 시곗줄.

나는 두 가지가 걸렸다. 하나는 가난한 남성은 물건을 팔지만, 가난한 여성은 몸의 일부(머리카락)를 파는(팔 수 있는) 현실. 이것이 성매매가 성별 중립적이지 않은 이유다. 선물을 사기 위해 매혈하는 남성은 드물다. 게다가 델라의 머리카락 묘사는 남성들의 판타지가 투사된 듯 사뭇 관능적이다. “지금 델라의 아름다운 머리채는 갈색의 폭포처럼 잔잔하게 흔들리며 몸 주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무릎 아래까지 흘러내려 마치 긴 웃옷같이 되었다.”(335쪽)

두 번째는 선물하기의 고민, 즉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훈련인 보살핌의 윤리다. 작가는 마지막에 상반된 문장을 남긴다. “동방박사들은 현명한 사람들이었다… 말구유의 갓난아기를 위한 선물은 다른 것으로 교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가장 소중한 보물을 선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짐과 델라는 현명한 사람들이었다”(340쪽). 가난한 사람은 호환성까지 고려할 다른 물건이 없다. 작가를 포함 대개 이 작품의 주제를 가장 소중한 것을 선물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한 마무리인 듯하다.

누구나 경험하듯이 선물 고르기는 상당한 감정 노동이다. 필요할까, 좋아할까, 다른 사람에게 줘 버리면 어떡하지, 집에 뒹굴어 다니면… 선물 고르기가 어렵기 때문에 받는 사람도 물건보다 “마음이 고마운 거지”라고 인사한다. 상대방이 기뻐하는 선물을 하려면 생활 습관, 기호, 주로 사용하는 물건, 나와의 관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선물의 핵심은 내가 좋은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좋은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보살핌, 돌봄의 윤리(care ethics)다.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선물은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바람직하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나 맞지 않는 옷처럼 지금 내게 적합하지 않은 물건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재활용, 녹색 선물’. 상대가 필요하면 되지 꼭 새것일 이유는 없다.

자기중심, 자기만족, 이기적인 사람이 있다. 이기적인 사람이 그나마 낫고 제일 골치 아픈 유형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이들은 타인에 대해 관심이 없고 주제 파악이 안 되기 때문에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모른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도 두 가지 스타일이 있는데, 타인에게 무조건 잘해주는 타입과 맘대로 함부로 하는 경우다. 둘 다 상대를 무시하는 행동이다.

돌봄 윤리의 핵심은 무조건 잘해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을 협상하고 타인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몸의 혼신(混身)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선물해서는 안 된다. 보상의 욕망과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분노를 어찌하려고?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선물에 대한 착각 중 하나가 ‘서프라이즈’다. 짐과 델라는 서로 의논하지 않았고 선물을 무용하게 만들었다. 선물하기의 핵심은 배려다. 타인의 상황을 고려하고 상상하는 일은 고차원의 윤리다. 헤아리기 어렵다면 물어보면 된다. 우리 문화는 타인의 욕구를 물어보는 것을 실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말 안 해도, 알아서 독심술로 맞춰야 하니 선물하기가 어렵다. 상품권과 현찰은 노동이 필요 없는데다 완벽한 교환가치까지 갖추고 있으니 최고의 선물일까. 하지만 최소한 연인 사이라면 성탄절에 현찰을 선물로 받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아닌가?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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