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과 문학권력을 둘러싼 논의가 반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는 느낌이다. 주요 출판사 문예지들은 가을호에 이어 겨울호에서 한층 진전된 입장을 내놓았다. 핵심 당사자로 지목돼온 평론가 남진우는 처음으로 ‘사과’의 뜻을 밝혔다. 2015년 한국 문학을 집어삼키다시피 한 표절 추문은 무엇을 남겼으며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일까.
우선, 표절에 관한 논의가 다양하고 깊어졌다. 신경숙의 해당 작품이 표절이냐 아니냐 하는 최초의 혼란과 다툼을 거친 뒤 이제 표절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논자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진 셈이다. 이런 가운데 윤지관과 장정일, 오길영, 남진우 등을 중심으로 표절에 관한 진지한 토론이 오가는 것은 고무적이다. 특히 남진우는 <현대시학> 11월호를 통해 사태 발생 이후 처음으로 목소리를 낸 데 이어 같은 잡지 12월호와 <21세기문학> 겨울호에 잇따라 표절에 관한 글을 발표했다.
<21세기문학>에 쓴 글에서 그는 해럴드 블룸의 <영향에 대한 불안>과 피에르 바야르의 <예상표절>을 통해 문학사 속 영향과 표절의 문제를 들여다본 뒤, “무인도에서 글을 쓰지 않는 한 표절 시비가 일어날 가능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길은 없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이인화의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를 다룬 <현대시학> 12월호 권두시론에서는 자신이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뽑은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표절 사실을 처음 확인했던 일에서부터 그 뒤의 사태 전개를 상세하게 돌이킨 다음, “신경숙을 비롯해서 여러 작가들의 표절 혐의에 대해 무시하거나 안이하게 대처한 것은, 해당 작가를 위해서나 한국 문학을 위해서나 전혀 적절한 대응이 아니었다”며 “사과드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남진우는 같은 글에서 “나를 포함해서 그동안 한국 문학의 일선에서 주도적으로 일해온 많은 사람들(…)은 문학권력이라는 말을 거부했지만, 실은 권력의 은밀한 단맛에 길들여져 있었”다는 반성도 내놓았다. 창비, 문학동네와 함께 문학권력의 한 축으로 꼽히는 문학과지성사의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서도 이 잡지 편집위원 강동호는 “문학권력 비판론은 한국 문학장의 민주주의적 구조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역사적 징후”라는 말로 역시 문학권력 비판론에 수긍의 뜻을 표했다. 염종선 창비 이사는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쓴 글에서 “‘문학권력’이란 말이 만악의 근원이 될 만큼 실체가 분명하고 객관적이냐”에 대해 의문을 표했지만, 같은 잡지가 소설가 김남일과 평론가 김경연·소영현 등 창비에 비판적인 이들을 좌담에 초대한 것은 그래도 긍정적이었다.
이 좌담에서 윤지관은 <문학과사회>가 “좁은 의미의 문학주의”로 후퇴했다고 지목했는데, 강동호는 오히려 <문학동네> 편집위원 권희철의 가을호 권두언을 “‘문학주의’라고 불리는 어떤 순정에 가까운, 탈역사적 신념”이라며 비판해서 주목된다. 오길영이 <황해문화> 겨울호에 기고한 글에서 “문학이 오직 ‘문학’만을 문제삼을 때 문학은 죽는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강동호는 “현재 한국 문학장에 일어나고 있는 돌발적인 충격과 파장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도래하기를 기다렸던, 바디우적 의미의 ‘사건’의 출현은 아닐까” 하는 기대를 표했다. 비록 사태가 완전히 마무리된 것은 아니고 관련 논의도 계속 진행 중이지만, 추문이 가능성과 계기로서의 사건으로 몸을 바꿀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bong@hani.co.kr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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