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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혜정 칼럼] 파리 테러와 3차 세계대전, 그리고 청년

등록 2015-11-17 18:57수정 2015-11-17 19:03

11월13일 금요일 밤 파리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동시다발 총격 테러로 127명이 사망했다. 시리아 어린 소년의 죽음으로 슬픔에 젖은 세계 시민들이 환대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는 몸짓을 만들어가려는 시점에 이런 참사가 일어났고 우리는 더 큰 혼란 속에서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언론은 이번 테러를 두고 ‘프랑스의 9·11’이라고 불렀다. 올 9월 이탈리아 군인묘지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는 지금 제3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는 중’이고 이권과 권력을 향한 탐욕이 만든 전쟁의 광기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안락한 지대’에 사는 선진국 국민들은 애써 외면하고 싶겠지만 지금 우리는 전쟁 중이다.

파리 테러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글로벌전을 선포한 이슬람국가(IS)는 폭력조직일까 국가일까? 석유 밀매와 유물 도굴로 역사상 최고 부자 테러단체로 알려진 이 조직은 시리아 유전지역과 유동자산 20억달러를 확보하였으며 이라크 영토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확실한 예산과 영토, 그리고 막강한 통신망을 확보한 이들은 점령지에서 국가 설립을 선포하고 국민들을 모집한다. 이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조직의 잔혹성과 영향력을 과시하며 청년들을 유혹하고 있고 특히 월급과 집과 아내를 준다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고 한다. 파리 테러에 참여한 청년의 면모를 보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이었다. 이른바 외로운 늑대들,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분노 조절이 어려운, 또는 목적 없는 삶에 지친 청년들을 아이에스로 몰고 있는 것이다. 세계 각 나라에서 키운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이 아이에스로 이주 중인데 죽기로 작정한 청년들이 강력한 살인무기를 손에 쥐고 싸우는 게릴라전에서 그간의 국민국가적 전법이 효력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이 게릴라전에서는 세계 해커 ‘의적’ 청년조직인 ‘어노니머스’가 더 효과적인 싸움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3차 세계대전은 더 이상 국가 간의 분쟁이 아니라 안팎의 폭력에 대한 전쟁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폭력과 국가권력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하다. 철학자 발리바르는 질문했다. 그간 국민들이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폭력에 직면했을 때 의지해온 것은 법과 공권력인데 만약 법과 공권력이 또 하나의 폭력이자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면 그때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간 국가만을 믿고 살았던 대다수 국민들은 사실상 폭력에는 속수무책인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무지에서 벗어나 폭력에 대응하는 방식을 익혀야 할 때이다. 폭력을 폭력으로 다스리려 하면 결국은 무기상만 살아남을 것이다. 폭력을 잠재우고자 한다면, 외투를 벗기기 위해서 거친 비바람보다 따뜻한 태양 볕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사회는 크고 작은 폭력을 자체적으로 다스리면서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을 양산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 자신 안의 맹목과 폭력을 다스리는 시민다움을 키워내면서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공적 영역을 만들어가는 것, 시민 간의 우애와 협동으로 폭력을 제어해내는 것이 바로 크고 작은 폭력을 다스리는 방법이며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을 양산하지 않을 방법이다.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최근 국내에서 일고 있는 ‘청년희망펀드’나 성남시와 서울시의 ‘청년(시민)수당’ 제도는 바로 이런 방향에서 시의적절한 움직임이다. 삶의 기획이 불가능하다고 느낀 청년들이 주도하는 자폭테러는 오로지 제대로 된 삶의 기획이 가능한 것을 알아차린 청년들에 의해 중단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청년들에 대한 지원제도는 1, 2차 대전을 겪은 노년들이 아니라 3차 대전을 겪고 있는 청년 당사자들의 기획과 실험, 그리고 제안을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청년들에게 ‘선물’의 필요성을 감지한 정치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시민다움을 키울 터전을 마련하는 일을 두고 책임감 있는 대화를 시작하기 바란다. 더 큰 폭력과 불안으로 우리의 모든 것이 잠식되기 전에.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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