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끝을 가늠하기 힘든 테러의 터널로 빠져들었다.
지난 14일 프랑스 니스에서 벌어진 트럭 테러 이후 2주 동안 유럽의 핵심 국가인 프랑스와 독일에서 6건의 테러형 공격이 일어났다. 무기는 트럭에서부터 도끼, 장검, 칼, 권총, 폭탄이 동원되어, 휴양지의 해변, 음악축제, 패스트푸드 식당, 기차, 백화점, 그리고 벽촌의 성당까지 테러 공격을 받았다. 수단과 방법, 대상, 장소를 불문한 무차별 테러 양상이다.
이는 지난해 11월13일 파리 도심에서 벌어진 이슬람국가(IS)와 연계된 동시다발 테러 이후 가장 우려했던 테러의 확산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2주간의 테러 파고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목적에 추동된 기존 테러와는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슬람국가가 자신들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용의자들이 이슬람국가 등 기존 테러단체와의 직접 연계나 명령을 받은 흔적이 없다. 용의자 대부분이 개인적 불만이나 불안한 정신상태이고, 이에 촉발된 자신들의 범행을 이슬람국가 등과의 연계로 정당화하고 있다.
겉으론 기존의 ‘외로운 늑대’형 테러이기는 하나, 내용적으론 정신병리적 양태를 보이고 있다. 이슬람국가 부상 전에도 외로운 늑대형의 테러범들에게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평균 나이가 30대 중후반이고,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는 비율이 약 40%로 상당히 높았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미국의 연구결과를 전했다.
니스 사건을 수사하는 프랑수아 몰랭 검사는 용의자 모하메드 라후아이즈 부흘렐(31)에 대해 “종교 문제에는 전혀 관련이 없고, 돼지고기와 술, 마약을 하고 난잡한 성생활을 해왔고, 무슬림으로 살지 않으며 이웃과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킨 우범자였다”며 범행 전에 갑자기 급진화되어 빠르게 변화가 일어나 “급진적 지하드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서 벌어진 최근 4건의 테러 용의자들은 ‘왕따’ 등으로 심각하게 소외된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들로 테러 조직과의 연관은커녕 주변과의 접촉도 없던 인물들이다. 뮌헨 쇼핑몰에서 총기를 난사해 9명을 죽인 이란계 독일인 알리 존볼리(18)는 무슬림을 증오하던 백인우월주의자인 노르웨이의 총기 난사테러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에게 영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매들린 굴드 미국 컬럼비아대 정신질환전염학 교수는 “테러분자 공격들에 대한 자세한 보도 등은 취약한 사람들이나 유사한 생각에 빠진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할지를 제공한다”고 대량학살의 테러가 ‘모방범죄’와 같은 전염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뉴욕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지적했다. 유명인들의 자살이 일반인들에게 자살 전염을 일으키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뮌헨 쇼핑몰 테러 용의자는 노르웨이 총기난사범을 흉내냈고, 니스 트럭 테러 용의자는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의 나이트클럽 총기난사 등을 연구했다. 올랜도 테러범은 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 테러 사건을 연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뚜렷한 동기 없이 광란적 살인을 저지른 용의자들에 대한 독일의 한 연구는 “이런 사건들은 무작위적으로 일어나지 않았고, 한번 사건이 일어나면 주 단위로 주기적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학교 총기난사 사건도 한번 사건이 일어나면 2주 단위로 이어진 현상이 지난해 한 연구에서 밝혀졌다.
이슬람국가 부상 이후 유럽과 중동의 상황은 이런 정신병리적 테러증후군에 취약한 사람들에게 테러 결행의 뇌관 역할과 명분을 제공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슬람국가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이슬람국가가 중동 현지에서 연합군의 공세로 영역이 축소되고 수세로 몰리고 있다. 유럽의 잠재적 동조자들도 이슬람국가가 있는 시리아 내전 현지로 가는 일이 어려워졌다. 대테러 전문가들은 지난해 파리 테러 이후 이슬람국가가 유럽을 상대로 테러를 부추기고, 유럽은 취약한 보안 문제로 당분간 테러 물결에 휩쓸릴 것으로 예측했다.
범죄의 풍선효과다. 즉, 근원을 치료하지 못하고 범행 현장만을 단속하면, 범행이 다른 곳으로 번지는 현상이다. 이슬람국가의 선전책임자인 아부 무함마드 아드나니는 “돌로 머리를 부수거나, 칼로 난자하거나, 차로 깔아버리거나, 높은 곳에서 던져버리거나, 목 조르거나, 독살하라”며 잠재적 동조자들에게 자신이 있는 곳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테러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프랑스 노르망디의 생테티엔뒤루브레 성당에서 벌어진 테러 공격으로 숨진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26일 시청 앞에 촛불을 밝히고 있다. 최근 2주간 독일과 프랑스에서 벌어진 테러 공격들은 불안한 정신상태의 용의자들이 저지르는 정신병리적인 테러증후군의 성격이 짙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생테티엔뒤루브레/AFP 연합뉴스
난민 물결과 이민자 및 무슬림 혐오 정서가 커지는 유럽 상황과 맞물리며 이슬람국가의 이런 촉구는 정신병리적 테러증후군에 취약한 이들의 테러 결행을 가속화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최근 유럽의 테러 발생 빈도가 잦아지는 것은 사실이나, 팔레스타인 테러와 급진좌파, 북아일랜드 독립 운동 테러가 기승을 부린 1960~70년대, 그리고 9·11테러를 전후한 때와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테러가 과거에 비해 늘었다고 보기도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즉, 최근 테러에 대한 과도한 반응과 지나친 우려가 오히려 ‘모방범죄’ 등을 통해 테러증후군을 확산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