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한 여자의 선택>
풀란 데비·마리에 테레즈 쿠니·폴 람발리 지음
홍현숙 옮김, 둥지, 1997
<한 여자의 선택>
풀란 데비·마리에 테레즈 쿠니·폴 람발리 지음
홍현숙 옮김, 둥지, 1997
이 책은 실존 인물의 자서전이다. 여성의 삶에 관한 ‘입문서’가 필요하다면 권하고 싶다. 성차별이 어떻게 계급, 관습, 인간 심리와 연결되어 작동하는가가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성차가 필연적으로 성차별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다른 억압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다만 ‘문명인’의 관점에서 ‘인도 천민’의 이야기로 읽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총 523쪽에 걸쳐 천민 소녀 ‘나, 풀란 데비’(Moi, Phoolan Devi)(원제)가 말한다. 한 페이지 건너 “그들이 나를 마구 때렸다”, “그들이 나를 강간했다”. 이 여성의 삶이 극단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입장 역시 또 하나의 극단이다. 흔히 “소설보다 더 극적인 현실”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이런 ‘소설’을 읽지 못했다.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의 현실에 대한 상상력이 없다.
학령기가 없어 출생 연도도 정확지 않다. 그녀는 1958년‘경’에 태어났다. 자료에 따라 1957년, 1958년, 1963년으로 되어 있다. 10살에 서른다섯살 남자에게 팔려가 학대 끝에 16살에 산적에게 납치되어, 산적이 된다. 18살에 산적 두목이 되어 가난한 이들을 돕다가 자신을 강간했던 남성 ‘중에서’ 22명을 살해한다. 1983년 인디라 간디 수상을 상대로 천민 계급과 성폭력 피해 여성의 인권 회복, 동지의 안전을 협상 조건으로 내걸고 자수한다. 54가지 혐의, 11년간 감옥살이(여기까지가 책의 내용). 출소 후 1996년 총선에서 상류 계급인 상대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된다. 그러나 2001년 집 앞에서 두 명의 괴한에게 살해당한다.(이후 그들은 탈옥했다.) 그녀의 삶은 영화(셰카르 카푸르 감독, <밴디트 퀸>, 1994)로 제작되어 칸 영화제에서 호평받았다.
1992년, 미국에서 에일린 캐럴 워노스라는 여성이 성 판매 여성들만을 골라 연쇄 살인한 남성 6명을 살해하고 사형 선고를 받은 사건과 대조된다. 여성의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고 여성만 법대로 처리한 경우다.
성폭력과 성역할은 문화적 규범으로 인식되어 법적 처벌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성들은 사적 복수를 꿈꿀 수밖에 없다. 실행하고 성공하는 사례가 많겠는가, 엄두도 못 내고 평생 분노와 우울증으로 살아가는 여성이 많겠는가? 우리도 역사가 있다. 1990년대 초반, 9살 때 자신을 성폭행한 남성을 죽인 여성이 법정에서 “나는 짐승을 죽였어요”를 외쳤고 현행 성폭력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피해자는 자해를 포함해 어떤 식으로든 복수한다.
12억 인구, 180종의 언어와 종교. 60%가 넘는 문맹률.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네 개의 카스트. 평민 바이샤와 천민 수드라 사이에 다시 2천개 직업으로 차별이 세분화된다. 카스트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이 1억명. 이들 중 국가, 사회, 가족으로부터 학대당하고 “장의사조차 원치 않는” 목숨인 여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스무살도 안 된 산적 두목, 풀란은 처음에는 자수를 거부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경찰에게 (또)강간당할까 봐서였다. 그녀의 일생은 “머리통이 박살 나기 직전까지 강간에 대한 생각뿐인, 사는 이유가 강간인” 부자, 경찰, 불량배, 가족, 지나가는 사람들이 휘두른 폭력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깨닫는다. “그들이 폭력을 쓰면 나 또한 폭력으로 대응하면 되는 것이다”(213쪽), “이제 내 차례였다. 난생처음으로 나는 나를 때렸던 사람에게 매를 들었다. 나는 점점 더 그를 세게 때렸다. 복수에 대한 갈증이 가라앉을 때까지”(280쪽), “죽여 버리는 것은 너무 자비로운 일이었다. 토막 낼 것이다. 오늘 한 토막, 내일 한 토막…”(407쪽)
나의 판타지가 이 책에 있었다. 문제는 사적인 복수가 아니다. 누구나 폭력 앞에 당황한다. 수치심, 무기력, 공포… 내 고민은 이것이다. 포박된 가해자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해도, 나는 울고 겁먹거나 존댓말로 “제게 왜 그러셨어요?” 이럴 것 같다. 최대 치욕이다. 크게 소리 지르는 연습부터 필요하다. 비명 말고.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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