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내가 나를 치유한다>
카렌 호나이 지음, 서상복 옮김, 연암서가, 2015
<내가 나를 치유한다>
카렌 호나이 지음, 서상복 옮김, 연암서가, 2015
학창 시절 나는 엄마의 기대만큼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실은 지금도 엄마의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1등 한 성적표를 갖다 드려도 엄마는 못마땅한 얼굴로 물으셨다. “2등하고 몇 점 차이니.” 엄마는 만족하신 적이 없다. 나는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영화 <사도>를 보면서 울다가 나중에는 내가 그처럼 죽거나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물론 나는 세자가 아니므로 그럴 일은 없고 그저 흔한 낙오자 증후증으로 괴로운 인생일 뿐이다.
<사도>는 ‘비(非), 반(反), 사(似) 힐링’이 판치는 이 시대에 훌륭한 치유 텍스트요, 탁월한 심리 드라마다. 이 영화를 탈맥락화 한다면 영조는 한국의 학부모, ‘꼰대’ 어른, 일부(?) 아저씨, 자기 파악이 안 된 지도자 등 한국의 남성 문화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신경증 환자다. 세대 분석이 대세지만 이런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신경증과 정신질환(mental disease)은 다르다. 정신병 환자는 신체 질환자와 마찬가지로 아픈 사람일 뿐이다.
흔히 노이로제(neurosis)라고 부르는 신경증은 자기 인식을 둘러싼 현실과 이상의 불일치, 그리고 이상적 자아상에 대한 집착을 말한다. 이 문제는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인간의 이러한 속성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대처하는가이다. 신경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에 직면, 대응, 관계 맺는 개인이 사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고전인 이 책이 번역, 옮긴이의 식견, 편집 등 만듦새가 좋게 출간되어 기쁘다. 이 책의 한글 부제-신경증 극복과 인간다운 성장-는 주제를, 제목 <내가 나를 치유한다>는 치유의 본질을 말해준다. 치유는 남이 해주는 위로나 호통, 반성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태도와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새로운 인식! 1950년작. 원제처럼 <신경증과 성장-자기실현을 향한 투쟁>(Neurosis and Human Growth: The Struggle Toward Self-Realization)이다. 자기 문제로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스트러글’이라는 표현의 절실함을 알 것이다.
저자 카렌 호나이(1885~1952)는 독일 태생의 미국 여성으로(그래서 한때 “호니”로 불렸다) 프로이트 이후 가장 뛰어난 정신분석학자 중 한 사람이다. 프로이트보다 사회문화적 영향을 강조하였으며, 멜라니 클라인과 함께 여성주의 정신분석과 신프로이트 학파의 선두주자였다.
<내가 나를 치유한다>의 핵심 주제는 외면화(外面化, externalization)이다. 삶이란 나의 내부가 외부로 향하는(투사) 과정이다. 나를 드러내는 것. 외면화는 그 말대로 개인이 타인, 사회와 새로운 세계(面)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 책은 다양한 외면화 과정을 보여준다. 가장 문제가 되는 외면화는 자기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자기 문제를 남의 문제라고 굳게 믿는 ‘네 탓으로 인한 나의 고통’이라는 고착심리다. 이들은 완벽주의자로서 자기를 스스로 정한 기준과 동일시한다. 자기를 자기 생각과 동일시하다니. 조물주도 못하는 일이다. 타인에게 자기 기준(이라지만 일관성은 없다)에 맞춰 살라고 요구하고 상대가 부응하지 못하면 분노, 경멸한다.
영조 같은 사람을 만족시킬 방법은 없다. <사도>는 인간에 대한 경멸의 끝을 보여준다. 이 관계에서 윤리, 정(情), 질서, 규범은 없다. 왕이 아니더라도 가능하다. 인생은 자신을 어떻게 경험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세계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해결은 자기 분석, 직면, 책임 세가지다. 우리에게는 이 과정을 도와주는 수많은 친구들이 있다. 우선, 내게 가능한 만족의 종류, 회피해야 할 요인, 가치의 위계, 인간관계 변화를 모색해보자. 즉 근본적으로 사는 방식(modus vivendi)이 열쇠다.(258쪽)
영화의 명대사. “너는 존재 자체가 역모다”, “공부가 국시(國是)다” 이 말 안 들어본 한국 사람 있을까. 그러나 사도 세자의 말은 깊은 위로를 준다. “목적 없이 날아가는 저 화살은 얼마나 떳떳하냐”(자유롭냐가 아니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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