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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는 난초에 너무 집념하였다

등록 2015-09-25 19:21수정 2015-09-25 21:02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무소유>
법정 지음, 범우사, 1976(2002)
누구나 ‘내 인생의 책’을 꼽으라면 매번 바뀌겠지만 밑그림은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중1 때 읽었던 <상록수>와 고등학생 시절의 <무소유>다. 전자는 내게 타인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후자는 생활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물론 실제 내 모습은 사회의식도 없고 무소유의 삶과도 거리가 멀지만, 무엇을 하든 그 세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있다.

무슨 소개가 필요할까. 1976년에 처음 출판된 <무소유>에는 표제작을 ‘넘는’ 빼어난 에세이가 많다. 지금 내 책이 2002년 3판 52쇄이니 그 뒤로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읽었겠는가. 다만 이번에 새삼 놀란 것은 수록된 글이 1969년에서 1973년 사이에 쓰였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여전하다.

다음은 내가 줄인 원문이다. “복원된 불국사에서 그윽한 풍경 소리 대신 새마을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서운함”, “골프는 인간의 죄를 벌하기 위해 창조한 전염병이다. 나의 취미는 (골프장에 대한) 끝없는 인내다”, “가을에 모든 이웃을 사랑하고 싶다. 단 한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나는 당신을 이해합니다는 어디까지나 언론의 자유에 속한다. 그저 이해하고 싶을 뿐이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무슨 말씀, 그건 말짱 오해라니까”, “도심에 아파트를 짓는 일은 인구 분산 정책에 역행하는 일이다”, “용서란 자비심이 아니라 흐트러지려는 나를 거두는 일이 아닐까”,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목소리를 통해 나 자신의 근원적인 음성을 듣는 일이 아닐까”, “카뮈의 뫼르소가 지금 함부로 총질을 한다면 햇빛이 아니라 소음 때문일 것이다.”

10대에 <무소유>를 읽고 삶의 방향을 정한 이유는 두가지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해온 나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청소와 집안 정리에 어린 마음에도 문제의식을 느꼈고 분노했다.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교체해주는 장롱용 기름걸레. 그 천으로 매일 장롱과 화장대를 닦은 기억은 지금도 끔찍하다. 사람(특히 여성)이 태어나서 평생 물건 정리와 남의 끼니 걱정을 하면서 살아야 하다니! (이 노동은 필수적인 만큼 분담해야 한다.)

여고 시절 나는 일상의 노동과 타인으로부터 벗어나 초월적인 삶을 살기로 했다. 현실을 곧 속세로 비하하면서 뭔가 고상한 세계를 꿈꾸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으니 눈이 번쩍했다. 서두의 간디처럼 행낭에 숟가락, 수건만 넣고 다니며 책만 읽으면서 이리저리 떠도는 삶.

법정의 말대로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무엇인가를 갖는 것은 그것에 얽매인다는 사실을. 그는 난초를 선물받는다. 애지중지 정성을 다해 기른다. 설레고 사랑하게 된다. 산방에 당신 외에 유일한 생명. 그러다가 난초 관리 때문에 외출이 자유롭지 않고 일상이 난초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한 것이다.”(25쪽) 급기야 그는 “소유는 범죄”라는 간디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우리는 소비와 더불어 저장 강박 시대에 살고 있다.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을 벌고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낭비한다. 어릴 적 다짐은 사라졌다. 혼자 살게 된 지금 나는 <무소유>를 소유하는 관리인이 되었다. 오래된 집이라 실평수가 넓은 편인데도 방 세개와 마루를 책과 자료가 점령했다. 공간이 없어 라쿠라쿠에서 잔 적도 있다.

책의 좋은 점은 머리에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인데, 나는 책읽기가 아니라 책이라는 물건을 좋아하고 있다. 생계 노동 외 대부분의 시간을 책 청소와 정리로 보낸다. 책장 청소를 위해 특별 구입한 청소기로 1차, 마른걸레로 2차, 물수건으로 3차. 주제별, 저자별, 저널별, 논문별로 분류한다. 매일 정리해도 끝이 없다. 엽서, 포스터, 문구류에 대한 집착도 있어서 그 관리도 만만치 않다. 유목은 고사하고 이사를 꿈꾸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후 기증도 마음에 놓이질 않으니, 병이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무소유>를 읽으면 뭐하나. 법정의 말대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니 노예가 따로 없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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