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 사진·글, 휴먼앤북스, 2004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 사진·글, 휴먼앤북스, 2004
금요일 저녁. 비까지 내리니 라디오는 감상(感傷)으로 넘친다. 외로운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내가 외로움에 대해 무슨 견해가 있을까마는, 분명한 것은 나 같은 타입은 외로움을 견뎌야지, 벗어나려고 버둥거리다가는 우리 엄마 말대로 “인생 망조의 지름길”이다. 외로움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책이 있는데 그들은 너무 쌈박하다. 분석하고 이해하면 뭐하나. 그들이 가버린 후(읽고 난 후)에도 외롭긴 마찬가지인데.
김영갑(1957~2005)을 다시 펼친다. 48년의 생애. 내내 혼자였던 그는 이제 제주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4·3으로 제주를 사랑하게 되었고 김영갑을 통해 제주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한때 우리 집은 그의 작품으로 도배를 해서 친구들이 ‘짝퉁 두모악’이라고 놀렸다.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으로 서귀포시 성산읍에 있는 그의 사진 갤러리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2004).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주제는 혼자임, 적막, 배고픔이다.
나는 몇 년 전 생계를 뒤로하고 1년간 제주 곳곳을 돌아다녔다. 엄마가 김영갑과 같은 병(루게릭)으로 돌아가신 후, 고아처럼 달랑 남은 남동생과 함께 제주에서 살려고 빈집을 찾아다녔다. 역시 생활과 여행은 달랐다. 제주는 아름다운 만큼 오만했다. 돌을 날려버리는 바람, 습기, 잦은 비, 변화무쌍한 날씨(물론 이마저도 아름다웠지만). 번잡하고 사람이 미어지는 곳에서 40년 이상 살아온 서울 토박이에게 제주는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적응되지 않는 시간은 해 진 후의 어둠과 적막함이었다. 대도시가 아닌 곳은 대개 그렇겠지만, 겨울에는 5시만 넘어도 어둑하고 행인이 없었다. 나는 해변가에 숙박을 했기 때문에 말없는 검은 바다가 무서웠다. 성수기의 유명한 관광지조차 밤에는 썰렁했다.
나는 깨달았다. 외로움은 그냥 외로움이라는 것을.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 리스먼을 붙잡고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공부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외로움은 김영갑처럼 자연을 혼자 겪는 것이었다. 겨울 밤바다. 이것이 외로움이었다. 깜깜하고 바람 불고 사람 없고 가게 없고 그냥 아무것도 없는 곳. 춥고 배고픔. 이것도 외로움이었다. 24시간 편의점이 없는 것도 외로움이었다. 더구나 산간 지역이라면.
타인과 소통, 의미 있는 일에 몰두, 자신을 잊는 헌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움, 사랑, 솔로의 꿋꿋함, 실존의 조건…. 이런 인식이 외로움에 대한 나의 개똥철학이었다. 이런 삶도 외로움을 덜어주긴 한다. 그러나 쉬운가? 김영갑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확실히 몰두할 대상이 있어서 나나 타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외로움은커녕 약간 흥분 상태였다. 당시에는 처음 보는 사진이 너무 황홀해서인지, 글이 읽히지 않았다. 사진가의 글은 별로라는 생각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읽으니 설움이 쏟아진다. “카메라를 잡을 수 없는 사진가의 삶은 날개 잃은 새의 운명처럼 시련의 연속이다.”(234쪽) 이런 평범한 표현조차 무슨 뜻인지 낱낱이 알 것 같다. 매일 자판을 치는 나는 예전과 달리 두 시간 연속 일하지 못한다. 손목이 시큰거려도 겁이 나고 작은 건망증에도 좌절한다.
김영갑은 젊었을 적 죽고 싶어 했지만, 난치병 선고를 받자 생명과 평화에 대해서 썼다. 그것은 기다림이다.(207쪽) 그는 병이 악화되자 “누군가에게 길을 묻는 일도 없으리라”고 다짐한다. 빠른 길은 없다. 외로움은 견디는 것이다. 외로움은 시간을 참는 것이다. 죽었다 깨어나는 일이다.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그가 말한 “나는 수없이 보아왔다. 다리 한쪽이 잘린 노루가 뛰어다니고, 날개에 총상을 입고도 살아남은 꿩”의 존재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마음이 조금 간절한 상태다. 취약함은 외로움의 일부일 뿐이다. 그는 외로움‘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의 고독은 고스란히 화면으로 남았다. 작가의 일상이 이토록 작품 자체인 경우가 있을까. 사진이 그다.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놀라움은 그가 외로움을 극복해서가 아니라 그 외로움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바람의 외로움은 피하고 싶을 정도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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