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젠더와 민족>
니라 유발 데이비스 지음, 박혜란 옮김, 그린비, 2012
<젠더와 민족>
니라 유발 데이비스 지음, 박혜란 옮김, 그린비, 2012
김미영님께. 메일 주셔서 고맙습니다. 비슷한 내용의 메일을 많이 받습니다. 그간 한 분씩 답장하다가 기력이 달려서 지면을 빌립니다. 성별 불문하고 질문은 한 가지. 아니, ‘항의’라고 해야 할까요? 제가 쓴 책 혹은 수많은 여성학 책 어디에도 “여성주의자의 개념 정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 글에서 여성주의자의 개념이 안 나왔다니 저로서는 뿌듯하고 독자분께서는 제대로 읽으신 것 같네요. 제가 여성주의 주변에 25년 있었는데 지금까지 읽은 책 중 페미니스트의 개념을 규정한 책은 아직 못 봤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여성주의자를 감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는 없다”, “흑인인 저는 여성이 아닙니까?”, “나는 레즈비언이지 여성이 아닙니다. 남녀 구분 자체에 반대합니다”, “페미니즘은 정의될 수 없는 경합하는 담론입니다”, “여성이 남성 사회와 맺고 있는 관계는 각각 다릅니다. 이해와 요구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위에 적은 것은 유명한 페미니스트들이 한 말이고 제 소견을 말한다면, ‘경계(border)에 대한 사유’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페미니스트냐고요? 페미니스트는 직업도, 정체성도, 멤버십도 아닙니다. 실망스러우시겠지만 어쩌면 그냥 지칭(指稱) 명사에 불과할지도 모르죠. 사실, 마르크스주의자든 채식주의자든 “~ 주의자”라는 표현 자체가 평화의 언어는 아니죠. 대개는 적대, 비난, 심문하기 위한 단어입니다. 물론, 저는 페미니스트를 지향합니다. 하지만 어떤 행동이 여성주의적인 것인지는 늘 고민스럽습니다. “나는 페미니스트다”는 효과적인 전략이지만, 그 효력을 잘 계산해야 합니다. 모든 선언은 일시적 전략이지 목표가 아닙니다.
페미니즘의 정의가 불가능한 것은 태생적 모순입니다. 모든 여성은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입니다. 그 다양한 사람들을 여성이라는 울타리로 억지로 묶고 여성의 가치를 남성을 위한 삶(이것이 성역할 규범입니다)으로 정해놓은 것이 성차별이니까요. 지구상에 여성이 35억명인데, 어떻게 여성이 같은 처지일 수 있겠어요? 간혹, 부자 여성이 있고 가난한 남성이 있는 것이 그렇게 이상합니까. 페미니즘은 계급, 인종 등 여성들 사이의 다름을 인식하고 차이를 갈등이 아니라 자원으로 삼고자 하는 세계관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rooting), 동시에 이동하고 변화하면서(shifting) 성장하는 것입니다.(233쪽) 성차별은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차이는 그 사회의 해석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직진”을 강조하는 정체성의 정치보다 교차, 우회로, 가로지르기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횡단의(transversal) 정치가 유용하지요.
성별, 계급, 인종은 독자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다른 제도와 결합해야만 작동 가능합니다. 그러니 계급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여성주의적 인식은 필수적입니다. 젠더는 이미 계급화된 개념이며(‘중산층 여성성’), 계급이나 민족은 젠더 구조에 의존하지 않고는 시동이 걸리지 않아요. 그러니 젠더가 중요하냐, 계급이 중요하냐는 식의 질문을 받으면 답하지 마시고 “엥겔스부터 읽으세요”라고 친절을 베푸세요.
여성주의 의식은 중요합니다. 문제는 여성주의에는 반드시 누구의 여성주의인가라는 논쟁이 동반된다는 사실입니다. 성매매가 가장 대표적인 이슈일 것입니다. 여성이나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격렬하지요. 이럴 때는 어떤 입장이 여성의 삶에 도움이 되는지부터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이 책을 읽으세요. 부제가 아주 정확합니다. “정체성의 정치에서 횡단의 정치로”. 페미니즘의 최신 논의이자 고전입니다.
그런데 법을 적용하는 판관도 아닌데 개념이 그리 중요한가요? 원래 개념을 규정하는 것은 권력 아닙니까? 언어는 권력 투쟁의 산물, 수시로 변합니다. 모든 지식은 임시적, 임의적이죠. 사전은 그 과정을 반영할 뿐이고요. 그래서 저는 “~ 주의자”보다 성실한 인간을 선호합니다. 아, 참 국립국어원은 ‘남성 페미니스트’를 “여성에게 친절한 남자”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앞에 “예쁜 여성에게만” 붙이면 완벽하네요!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