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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사람 곁에 사람

등록 2015-08-07 19:26수정 2015-08-07 22:13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박래군 지음
퍼블리싱 컴퍼니 클, 2014
20대에 엔지오에서 일할 때 성격유형(MBTI) 검사를 받았다. 다른 부분은 특이할 것이 없었는데 ‘에너지 방향’에서 극단적인 그래프가 나왔다.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introversion) 타입이 있는데, 나는 그 부분에서만 치우친 ‘I’형으로 매우 내성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주위에 사람이 많으면 기력이 떨어진다.

지금 서울구치소에 구금 중인 수형자 번호 72번, 박래군의 책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인권운동가 박래군의 삶과 인권 이야기> 제목에는 ‘사람’이 무려 세번 나온다. 제목처럼 왠지 저자는 사람에 대해 나와는 다른 철학이 있을 것 같다. 한두 번 눈인사만 나눈 사이인데, 1년 전쯤 내 이름을 밝히고 뜬금없이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사회 진보운동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황당했을 텐데 바로 답이 왔다. “관성과 패거리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인권운동사랑방의 등장, 에바다복지회 사건, 용산참사, 통합진보당 사건 등 지난 30년의 한국사다. 당사자 아니면 아니, 당사자도 믿을 수 없는 일들. 억울하고 기가 막혀 “어떻게 사람이…” 이런 말이 절로 나오는 몸이 분(憤)을 이기지 못하는 일들. 나 같은 사람은 투쟁은커녕 현실을 바라보는 것조차 힘이 빠지는 그 길을 헤치고 또 헤아려온 그는 담담하다.

내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전형적인 수배 생활과 거리가 먼 “매우 특수한 수배 생활”(소제목, 2부, 233~241쪽)이었다. 용산참사와 관련해, 장례식장에서 수배 생활을 한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왔다. 지지 방문에 시달린 그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찾아온 이들 앞에서 잠든다. 그렇게 장례식장에서 6개월, 영안실에서 4개월을 버텼다.

나는 그의 낙관적이고 성숙한 자세가 그저 “나는 한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노래도 슬픈 노래, (중략) 이별의 노래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즐거운 것, 재미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 슬프다, 그러니 같이 울어 달라 하면 외면받더군요”(7쪽) 같은 깨달음에서 나온 대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이 책을 사서 읽은 이유는 오로지 하나. 그는 왜 지치지 않을까, 사람이 지겹지 않을까, 어떻게 계속 저렇게 살 수 있나, 왜 망가지거나 타락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궁금해서다.

인생에서 비판 면죄부를 받은 사람은 없다. 망자도 비판받는다. 글을 쓰는 사람이나 사회운동가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들은 대체로 어느 방향에서의 비판이든 거부 반응이 심하다. 자신은 희생하고 있으며 남다른 도덕성이 있다고 자부하는 것이다.

인생의 어느 장면에서나 사람, 인간관계가 문제지만 특히 사회운동에서 사람은 모든 것이다. 아무리 “구조적 문제”여도 동시에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국가가 역할 자체를 팽개친 자본 중심의 지구화 시대. 모든 행위자들의 자율적 영역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나는 오버하는 가해자(‘하수인’)와 피해자의 악(惡), 저항 세력의 출세주의를 자주 목도한다. 달라진 사회운동의 일면이다.

박래군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뭔가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이다. 감히 병렬적으로 쓰자면,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비판이 불가능한 사회운동 내부의 문제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내가 서른살에 단체 활동을 그만둔 이유는 사람이 하는 일과 사람의 질은 반비례할 수도 있다는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원래 문제가 많은 사람이 사회운동으로 도피하거나 삶의 진지로 작정한 경우도 있고, 활동 과정에서 망가지고 타락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어느 집단에서나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런 인간사다. 다만, 이 바닥은 아주 뛰어난 은폐 논리를 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나도 어리석은 줄 알지만, ‘깨끗한 영웅’을 찾아서 혐인증(嫌人症)을 치유하고 싶은 것이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세월호 사건에다 보복성 기소까지. 박근혜 정권에 대해서는 몸서리치는 것 외엔 할 말이 없다. 나는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에서 그의 석방을 고대한다. 물어보고 싶다. 사람 곁에 꼭 사람이 있어야 하나요? 선생님은 사람이 좋습니까? 사람 때문에 인생이 난파된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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