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먼지>, 조지프 어메이토 지음, 강현석 옮김
이소출판사, 2001
<먼지>, 조지프 어메이토 지음, 강현석 옮김
이소출판사, 2001
언어는 먹을거리만큼이나 원산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외국어로는 무릎을 칠 만한 표현이 우리말로 옮기면 어색해지는 단어가 종종 있다. 당대 현장에서의 지식 생산이 절실한 이유다.
며칠 전 “그 일(여성에 대한 폭력)은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라는 취지의 여성운동 행사에 갔다. ‘먼지 차별(micro aggressive) 반대’라는 표어가 흥미로웠다. 미세하지만 깊숙이 스며들어 대응하기 어렵고, 흩어져 있어도 불쾌하고 쌓이면 더 위협적인 미시적 공격. 한국은 어느 세월에 ‘문명국’이 될까. 한국 여성에게 먼지는 이미 뭉쳐져 있는 펀치다. 큰 정치와 사소한 정치의 위계에 저항하는 여성주의를 잘 드러내는 말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간은 부유하는 우주의 먼지이고 나는 평소 먼지(dust)와 동일시해왔기 때문이다.
인문, 사회,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지성이란 이런 책이 아닐까. 조지프 어메이토의 <먼지-작은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의 역사>는 숨어 있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은 인간이 먼지와 먼지의 은유를 통해 자신을 설명해온 방식을 분석한다. 먼지관(觀)의 변화는 곧 인식, 과학 기술, 생활 방식, 우주관 등 인류사 자체다.
먼지들의 의미는 각자 방향이 다르다. 책의 대부분은 우리가 싫어하는 먼지를 다룬다. 오물, 보이지 않는 위협, 비천함, 감염, 더러움…. 하지만 20세기는 존재의 계층 구조를 역전시켰다. 고대 이래의 전제, 즉 존재와 형식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퍼진다였지만 이제는 소우주가 대우주를 설명하는 근거가 되었다.(238쪽) 인간의 최초 인식 도구는 자기 몸이었기에 먼지는 몸의 사이즈에 가로막혀 그동안 상상력 밖에 있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자, 보이지 않는 것이 새로운 경험과 사고의 기준이 된 것이다. 보이지 않았던 것을 통해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는 것, 모든 사유의 시작이다.
인간 중심주의에는 휴머니즘, 자연 파괴라는 양면이 있다. 추구하는 바가 생명 존중인가 돈인가에 따라 휴머니즘의 이름으로 망가지는 것도 달라진다. 나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는 사고가 현재 디스토피아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만물의 영장’끼리도 매우 사이가 좋지 않다. 백인, 남자, 부자만 영장이다.
인간은 대단하지 않다. 모든 것들 중 하나일 뿐이다. 지구, 자연, 다른 생물들의 관점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벼룩의 비늘 사이에 끼어 있는 진드기(117쪽), 트리파노소마 감비엔세(아프리카 수면병을 일으키는 기생성 원생동물, 164쪽), 들판의 풀잎들… 이 무수한 ‘미물’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관심이나 있을까. 아니, 복수가 시작된 지 오래다.
슬픔과 분노로 잠이 안 올 때 나만의 작은 요령이 있다. “나는 먼지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nothing)”를 계속 중얼거린다. 그러면 어느새 괴로움에서 조금 멀어진다. 하찮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의미, 우연, 찰나. 이 세 가지 조건에 의해 세상에 던져진 아무것도 아닌 존재. 미‘물’(微物)도 아니다. 어디에도 닿지 않는 순간의 빛. 작고 보잘것없어서가 아니라 잠깐 지나가는 것이기에 보이지 않는 존재다.
다짐해도 다짐해도 금세 잊혀지는 내 좌우명. ‘지구에 머무는 동안 타인과 자연에 민폐 끼치지 말고 조용히 사라지자.’ 그러므로 괴로움에 몸부림칠 일도 없다. 조금만 견디면 된다. 괴로운 시간은 대개 “인생은 대단하다. 고로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때다.
행복한 조우. 지금 라디오에서 로이 킴과 정준영 버전이지만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가 나온다. 노래 가사는 그대에게 가기 위해 “새가 되어”가 많다. 새와 먼지. 몸집 차이가 크다. 그에게 새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김광석은 먼지가 되었다. 수줍은 욕심이지만 흡착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작은 가슴 모두 모두어 시를 써 봐도 모자란 당신/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정착하는 먼지와 바람에 날리는 먼지. 세상에서 가장 큰 존재 방식의 차이다. 먼지는 흡착되면 끝이다. 그러니, 그저 곁으로.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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