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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긋지긋

등록 2015-07-17 19:54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끝나지 않는 노래”
이희중 지음, <참 오래 쓴 가위>, 문학동네, 2002
글쓰기 원칙 중에 ‘현재진행형을 쓴다’가 있다. ‘지금 상태’를 쓰라는 것이다. 책상 위에 계통 없는 책들이 엎어져 있다. 써야 할 글과 하고 싶은 말이 갈등한다. 당연히 후자 승. 어차피 앞의 것은 안 써지기 때문이다. 이 시는 요즘 나의 타령이다. 다른 책에도 인용했다. 나는 꽃도 모르고 시도 모른다. 지난주 꽃다발처럼 이 시도 같은 친구가 보내준 것이다. 이희중 시집 <참 오래 쓴 가위>에 수록된 “끝나지 않는 노래”(116~117쪽) 전문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까
꼭 끝난 줄 알았네
이 노래 언제 끝납니까
안 끝납니까
끝이 없는 노랩니까
그런 줄 알았다면 신청하지 않았을 거야
제가 신청한 게 아니라구요
그랬던가요 그 사람이 누굽니까
이해할 수 없군
근데 왜 저만 듣고 앉아 있습니까
전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다른 노래를 듣고 싶다구요
꼭 듣고 싶은 다른 노래도 있습니다
기다리면 들을 수나 있습니까
여기서 꼭 듣고 싶은데, 들어야 하는데
딴 데는 가지 못합니다
세월이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발, 이 노래 좀 그치게 해, 이씨

수학의 언어는 공식. 수학이 아름다운 이유는 공식 때문이다. 공식은 무한한 언어이자 최소한의 기호로, 삼라만상을 파악할 수 있다. (좋은) 시가 미학의 절정인 이유도 이와 같다. 시 한 줄이 사전이다. 은유, 메타포. 말뜻이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독자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어떻게 읽어도 말이 된다. 시야말로 읽는 자의 것이다. 리듬감이 좋은 이 시는 내가 아는 작품 중 상당히 큰 사전류에 속한다. 세상에 끝나지 않는 노래가 한둘이겠는가. 누구에게나 끝나지 않는 노래가 무수할 것이다. 가사의 사연은 또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전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그런데도 이 시는 묘하게 밝고 희망적이다. 심지어 옛날 음악다방에서 반복이 아니라 연주 시간이 긴 음악을 듣는 무료한 대학생의 투정 같다. “다른 노래를 듣고 싶다구요” 시인은 다른 노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다른 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노래도 언젠가는 지긋지긋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하나밖에 없는 어떤 개별 단위가 끝나는 것이다. 삶은 반복, 진퇴, 연속하는 흐르는 시간이 아니다. 역사가 시간의 서사라는(역사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가는 세월은 잡을 수 없지만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인생은 바로 이곳에서, 단 한번 일어나는 일이다.

“지긋지긋”은 세상의 끝이다. 데드 엔드(dead end), 막다른 곳, 막장(幕章)…. 미국 수사 드라마 시에스아이(CSI) 시리즈 중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잦은 가정폭력 신고에 신참과 베테랑 두 여형사가 출동한다. 신참이 남자를 현장에서 체포하자고 주장하자 선배 형사는 말한다. “그럴 필요 없어. 남자는 금방 풀려날 거고, 우리는 두 달쯤 후에 이 집에 다시 오게 될 거야. 그때는 여자가 죽어 있겠지.” 이것이 지긋지긋함이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지긋지긋하게 살면 안 된다. 지긋지긋은 끝나지 않음이 아니라 끝이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 말대로, 죽어야 끝난다. 죽음은 끝이어서 좋다. 그래서인지 ‘죽다’는 우리말은 아름답다. 내가 아는 수준에서 ‘죽다’의 영어 표현은 die, pass away, perish(멸망하다), expire(통조림 유통기한에 사용하는 단어)지만, 우리말은 고상하다. 지긋지긋한 노래가 끝나는 것을 감사한다. 영원히 잠들다(永眠), 세상과 이별하다(別世), 운명을 달리하다. 인류 공통의 표현은 “한 줌 흙으로 돌아가다, 먼지가 되어 우주 속으로 사라지다”가 아닐까. 한 음절로는, 졸(卒). 마치다.

이 개운함! 개운함에도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은하계의 입장에서 인간은 아무도 모르는 먼지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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