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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괴물과 천사

등록 2015-05-11 18:40

김선우 시인·소설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내 안의 괴물을 봐라’ 같은 말이 회자되는 이유가 없지 않지만, 이런 말에 잡아먹힐 때 인간은 정말 자기 안에 괴물을 키우게 되기도 한다. 말이 지닌 전염력은 예상보다 강력하니까. 그러니 어느 시대건 압제자들은 압제의 말을, 민중은 자유와 해방의 말을 얻고자 했다. 남 탓 말고 나부터 반성하자는 좋은 취지일지라도 괴물 운운하는 말은 매우 조심히 써야 한다. ‘사람은 안 변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같은 경험의 반복이 이런 말을 계속 회자시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더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기를 꿈꾸어야 한다. 생의 모든 순간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요괴 중에 손오공을 엄청 괴롭히는 ‘홍해아’에 대한 관음보살의 선택은 흥미롭다. 관음보살의 도움을 받아 손오공이 홍해아를 잡아서 죽이려 할 때, 정작 관음보살이 말리면서 말한다. ‘그놈이 잠깐 길을 잘못 들어 그렇지 근기가 좋네.’ 그러곤 냉큼 홍해아의 머리를 깎아 제자로 삼아버린다. 요괴에서 순식간에 관음보살의 제자가 된 홍해아! 홍해아의 마음에 일어날 변화와 관음보살의 미소를 상상해본다. 모든 것은 연기적이고, 연기(緣起)란 곧 관계론이다. 위선일지라도 선을 행하려 노력하다 보면 마음에 선의 힘이 붙는 게 아닐까. 선한 행동을 하다 보면 그 행위의 힘으로 행위의 주체가 변화되기도 한다. ‘내 안의 괴물’ 운운보다 ‘내 안의 천사’나 ‘내 안의 부처’를 더 많이 말하며 작은 행동이라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낫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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