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미디어의 이해>
마셜 맥루언 지음, 김성기·이한우 옮김, 민음사, 2002
<미디어의 이해>
마셜 맥루언 지음, 김성기·이한우 옮김, 민음사, 2002
영어, 무기(arms)의 어원은 팔이다. 팔을 뻗을 수 있는 거리까지가 자기 방어의 범위다. 그 길이는 곧 타인과의 거리가 된다. 남성들의 멀리 오줌 싸기 경쟁도 비슷한 원리다. 이처럼 몸의 확장은 영역 표시, 힘을 의미한다. 사정(射程/‘射精’)거리가 딱 그 말이다.
마셜 매클루언의 걸작 <미디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를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과소평가된 고전, 부제가 책 내용을 정확히 지시하는 책, 인간과 도구에 심원한 분석. 미디어란 무엇인가? 몸의 확장이다. 우리 말 번역은 “인간의 확장”으로 되어 있다. 지금 구입한다면 테런스 고든이 편집한 김상호 교수의 번역(커뮤니케이션북스, 2011)을 권한다.
이 책의 가장 유명한 명언이지만 가장 오용되는 말이 “미디어는 메시지다”. 미디어는 형식이고 메시지는 내용이라는 착각. 나는 대부분의 강의에서 이 말을 인용하는데, 대개 미디어를 전달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생각과 전달 방법이 분리되었다는 인식은 인간이 자기 몸 외부의 사물을 통제 수단, 리모컨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주체와 대상의 이분법, 오랜 서구 문화의 산물이다.
오늘날 일상을 지배하는 미디어 권력은 미디어가 전달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메시지, 몸의 확장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중독은 그것이 내 몸의 일부여서다. 기억은 뇌가 아니라 컴퓨터 파일에 있다. 여기저기에 집, 카페, 방이 있다. 유선전화, 휴대전화, 문자, 전자우편, 손편지 등 매체에 따라 전달 내용이 제한되거나 달라진다. 현대인의 고독을 이야기할 때 미디어를 빠뜨릴 수 없는 이유는 외로움이 몸의 확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즉 몸이 확장될수록 불특정 다수와 ‘친밀’해지는 대신 나는 누구인지 모르게 된다.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의 “타인 지향성”부터, 최근 스테판 G. 메스트로비치의 <탈감정사회>의 “유사 감정”까지 모두 미디어 분석에 기초한 개념이다.
문제는 인간이 자신이 확장한 것에 사로잡히게 된 현실이다.(82쪽) 나는 인터넷을 잘 사용하지 않지만 ‘연구’를 위해 처음으로 트위터에 들어갔다. 상대에게 알리지 않고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 같은 이상한 경험이었다. 최근 우연히 어떤 집단의 중대한 의사 결정 과정에 개입하게 되었는데, 협상 결과를 트위터에 거짓으로 올리는 파워 유저가 문제였다. 모든 구성원들이 “그놈의 트위터를 박살내야”, “손가락을 잘라야” 등의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지켜봤다.
매체의 역기능, 순기능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트위터라는 매체가 작동하는 현실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매체가 많아지면서 개인에 따라서는 스스로 ‘케이비에스’(KBS), ‘조선일보’가 되어 사정거리를 시합한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인간관과 일치한다. ‘1인 1표’가 실제로 존재한 적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몇년간에 걸친 수백명의 투쟁이 팔로어 만명을 거느린 한 사람의 손가락으로 조작 가능해진 기술이다. 거대한 몸(미디어)이 타인의 노력과 진실을 간단히 앗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트위터는 ‘유명인사 되기 질병’, 일명 셀프 메이드 ‘셀럽’(celebrity)들로 넘쳐났다. 컴맹의 뒤늦은 개탄이겠지만, 특히 두 가지가 놀라웠다. 개인 간에나 오고 갈 내용을 게시, 유명인과 친한 사이임을 선전하거나 경쟁자를 향한 지나친 어휘들. 셀럽이 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을 때 공동체는 붕괴한다. 윤리, 아니 체면을 벗은 외설성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또 하나는 영화평론가 김혜리의 지적대로, 남이 힘들게 쓴 책과 평론에 대해 “단 한 글자(빠, 까, 혐…)로 더 큰 권력을 휘두르며 커뮤니케이션의 마침표는 내가 찍는다는 쾌감”에 중독된 이들이었다.
공론장? 매체가 많아질수록 간편해질수록 사용자가 많을수록 중독될수록, 소통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애인에게 보낼 문자를 배우자에게 보내는 실수는 고유한 개인이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물체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단지 아이티(IT) 강국의 부작용일까. 몸의 확장으로 지구는 더욱 좁아졌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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