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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차맛 우러나듯 사람도

등록 2015-04-22 18:47수정 2015-04-22 18:47


김선우 시인·소설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4월과 5월은 매일 달라지는 산빛을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는 계절이다. 양력으로 4월 초인 청명을 지나면 중순에 곡우가 있고 5월 초엔 입하가 있다. 기분 꿀꿀한 날 문득 ‘청명-곡우-입하’라고 주문 읊듯 수리수리 말하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살캉한 연둣빛으로부터 점점점 진해지는 초록 잎들이 눈앞에서 흔들리는 느낌, 혹은 손끝이 그 연초록에 물드는 느낌!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그래, 내가 자연이지!’ 하는 기분이 들어 행복해진다. 인간의 오감을 활용한 명상법이 연구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일 듯. 곡우와 입하, 라고 말하는 순간 눈앞에 연둣빛 말간 어린 찻잎들이 가득해지고 입속에 풋풋한 단침이 고인다. 곡우 무렵은 차 만드는 계절이다. 이때 수확한 어린 찻잎은 최상의 차를 만들기에 적합하다. 첫물차는 곡우 며칠 전에 아주 어린 잎을 따서 만드는 ‘우전(雨前)차’다. 두물차는 곡우에서 입하 사이에 아직 잎이 다 펴지지 않은 가는 찻잎으로 만드는데 참새 혀처럼 작고 가늘다 해서 ‘작설(雀舌)차’ 혹은 ‘세작(細雀)차’라고 한다. 뜨거운 물과 찻잎과 시간, 이 단순한 조합이 이끌어내는 다채로운 차맛은 식물 한 그루의 삶이 그대로 하나의 우주임을 드러낸다. 내용 없는 레토릭이 아닌 매우 구체적인 실존으로서 말이다. 찻잎 하나의 실감이 이럴진대 세상 존재들 그 낱낱의 다양한 개성들은 말해 무엇할까. 저마다 하나씩의 우주인 우리도 서로에게 각각 알맞게 우러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 맛 우러나는 사람!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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