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처럼 대한민국호의 선장은 배를 버리고 도망갔다. 그도 답답했을 것이다. 1년이면 웬만하면 잊어먹어야 하는 시간인데 잊기는커녕 상주를 자청한 국민들이 대규모 추모제를 연다고 하니 속 시끄러웠을 것이다. ‘지겹다’고 입이 되어주던 사람들마저 차츰 이 막돼먹은 정권에 피로감을 느끼는 시점이니 그도 불안하긴 할 것이다. 상가에 최루액 난사하는 일쯤엔 손톱만치도 윤리적 동요를 하지 않는 철벽 공권력에 머리 아픈 일 맡기고 선장은 외유 갔다. 경찰은 ‘불법 폭력’으로 충성을 다했다. 유림인 내 아버지가 가끔 인용하는 <정관정요>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군주는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엎을 수도 있다.” <정관정요>는 당나라 태종이 그를 보좌한 신하들과 문답한 정치문답집이다. 당태종 곁에는 뛰어난 인재가 많았는데 태종은 이들의 직언과 비판을 잘 받아들여 정치에 반영했다. 또한 그는 군주의 자리가 백성이 만들어준 것임을 알고 있는 지도자였다. 배를 엎을 수 있는 힘 역시 백성에게서 나옴을 알았던 그는 몸을 낮추어 백성 앞에 겸손했다. 백성의 뜻을 살펴 받드는 것이 군주의 자리를 유지하는 길임을 알았던 당태종 시대를 태평성대 ‘정관의 치(治)’라 부른다. 사회적 스트레스와 집단우울증세가 나날이 짙어지는 지금 여기는 어떤가. 이쯤 되면 물이 요동쳐 배를 엎어야 하지 않겠나. 그만 엎어버려야 할 배와 어서 건져 올려야 할 배 사이, 물방울 하나씩부터 꿈틀거려야 한다.
김선우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