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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인간은 변하지 않아

등록 2015-04-17 20:03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타인의 삶>,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널스마르크 지음
권상희 옮김, 이담북스, 2011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무엇일까. 저 인간은 죽어도 안 변해! 인간은 누구나 변해. 이 대화도 후보군 중 하나일 것이다. 사람은 변하기도 하고 안 변하기도 한다. 변화도 바람직한 방향, 그렇지 않은 방향이 있다. 대체로 “인간은 안 변한다”는 확신이 더 많은 것 같다.

영화 <킹스맨>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간이 우수하다고 해서 고귀한 것은 아니다. 남들과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 과거의 자신과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기 변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사람이 꽃보다 예쁠 때는 이때뿐이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삶의 의미고, 고통의 반대가 행복이 아니라 권태인 이유다.

여전히 소명으로서 직업이 있다고 믿는다. 예술가, 지식인, 정치가의 업무는 자기 변화다. 이들의 현실과 선택에 관한 독일 영화 <타인의 삶>(2006). 이 책은 영화의 대본이다. 나 스스로 부끄러울 때, 더러움에 둘러싸여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작품의 주인공 비즐러를 생각한다. 나도 그처럼 헤드폰을 끼고 내게 타인의 삶이 침투하기를 고대한다.

주인공은 옛 동독 국가보안국(슈타지)의 충성스러운 간부다. 정치적 신념 못지않게 비판 의식과 호기심이 많고 공부를 좋아하는 인물이다. 그러던 그가 반체제 인사로 지목된 예술가 부부를 감시하는 업무(도청)를 맡으면서 이제까지 헌신했던 체제와 자기 삶에 대해 총체적인 회의에 빠진다. 그는 감시 대상을 동경한다. 사랑이나 욕망이 아니다. 나는 이 감정에 관심이 있다. 일생을 공산주의 조국에 바쳐온 그가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외로움 앞에, 요즘 목련 꽃잎처럼 간단하게 떨어진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 중에 “도청과 국가권력을 비판한 영화”라는 의견이 있다. “정치보다 예술을 사랑했던 주인공”, “인간의 용기로 공산주의 체제 극복”도 있지만 도청론보다 황당하지는 않다. 이건 ‘다르게 읽기’가 아니다. 도청과 동독의 상황은 배경이지 주제가 아니다. 물론, 도청은 도청이다. 하지만 주인공에게는 생애 처음 접한 허락받지 못한 관람이었다. “나는 당신의 관객입니다.”(112쪽)

부러움은 욕망하지만 상대방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괴로운 감정이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성공을 위해 누가 더 더러워질 수 있는가를 경쟁하는 시대, 남과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폐허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삶을 추구한다. 선망(envy)에 담긴 시기나 열등감은 없다. 타인의 삶이 있고 자기 삶이 있으나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고 싶다’고 실천할 뿐이다.

사랑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쉽다’. 그것은 동일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엔 적대했으나 지금은 선망하게 된 타인, 나는 다가갈 수 없는 다른 세계에 사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일은 경험하기 힘든 인간성이다. 사상, 사랑, 권력이 아니다. 사람은 사람만이 변화시킬 수 있다. 이 작품은 타인의 삶이 나의 삶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으며 나는 얼마만큼의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인간인가를 질문한다.

변화를 외칠 때 우리는 무엇을 각오하는가. 감옥행이나 죽음‘보다’ 지금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는 무방비(open) 상태가 더 두려운 현실이 아닐까. 생각과 더불어 지위와 일상도 송두리째 달라진 삶. 아이헤 슈타지 대학 교수에서 우편물 배달원으로 강등된 그는 여전히 성실하다. 그의 외롭지만 충만한 표정. 슬픈 걸음새. 주어진 현실에 몰두하는 몸. 나는 절대로 그처럼 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선망할 수조차 없다. 그리울 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이 작품의 인물들은 어느 체제에나 있다. 어디서나 살아남고 사소한 편리 때문에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사회주의 통일당 중앙위원회 위원’인 장관 헴프는 극작가에게 말한다. “인간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담긴 당신 작품을 사랑하오. 작품에는 얼마든지 그런 걸 써도 상관없소만, 인간은 변하지 않소.”(37쪽)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자기가 변하지 않을 뿐이다. 아니, 이런 인간일수록 쉽게 변한다. 문제는 무엇을 위해 변하는가이다. 권력인가 아름다움인가. 지혜로운 사람들은 후자를 추구한다. 권력은 타인의 시선이고 아름다움은 자기 충족적이기 때문이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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