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명상하듯 마음이 정화되는 책들이 있다. <내성천 생태도감>을 무릎 위에 놓고 책 위로 햇살이 어룽대는 것을 보고 있다. 마음이 고요해져 ‘평화’라는 말을 입속에서 궁굴린다. 참 이상하지 않은가. 맑고 얕은 모래강과 풍성한 왕버드나무 어우러진 속에 다양한 동식물들이 살아가던 내성천이 급격히 황폐해지는 모습을 목도하며 얼마나 가슴 아팠나. 그 생생한 아픔을 이토록 아름답고 정갈하게 전달하는 책을 앞에 놓고 평화라는 말이 떠오르다니. 슬픔에 깃든 희망이랄지 고통에 깃든 삶의 힘이랄지 그런 힘들 때문일 테다. 책을 향해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냥 그렇게 말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아픈 세상 어디든 표 안 나는 일들을 성심을 다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세상을 가만가만히 어루만지는 그 힘으로 세상은 여태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수달, 하늘다람쥐, 흰목물떼새, 원앙, 호사도요, 먹황새, 흰꼬리수리, 새호리기, 쇠황조롱이, 붉은배새매, 수리부엉이, 흰수마자, 왕은점표범나비, 꼬리명주나비, 늦반딧불이…. 내성천의 멸종위기 야생생물들 이름을 가만히 부르는 것만으로도 아프고 또 환하다. 기억할게. 그냥 사라지게 하지 않을게. 이런 말들이 따라오며 마음은 벌써 문 열고 나가 영주댐 근처까지 내달려간다. 4대강 사업으로 전국의 강들이 죄다 망가졌지만, 그래도 제발, 이 아름다운 내성천마저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영주댐 공사를 중지하라고, 바람인 듯 물소리인 듯 말하고 또 말한다.
김선우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