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어렵다고들 한다.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시험 봐야 하니 ‘빨간 펜 들고 밑줄 쫙!’ 그으면서 주제, 소재, 비유법 파악하며 시를 ‘공부해온’ 기존 시 읽기 교육의 악영향이 하나다. 시험문제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시는 소설, 수필보다 어려운 게 맞다. 시언어가 가진 함축성 때문이다. 정서와 상상의 여백을 창조하려는 시언어는 1+1=2로 직결되지 않는다. 시는 기본적으로 ‘1+1=∞’를 추구하는 예술이니까. 또 하나, 시가 어렵다고 말하는 많은 이들은 사실 ‘낯섦’에 대한 불편함을 어렵다고 말한다. 시는 ‘느껴지는 대로’ 읽으면 되는 거다. 한 강의실에서 시 한편을 칠판에 적어 백명이 읽었다면, 그 한편의 시는 백편의 시가 된다. 시 한편을 저마다 모두 다른 정서, 경험, 사유로 읽어내므로 어떤 이들은 그 시에 감동하고 어떤 이들은 별 감흥이 없을 수 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편의 시가 백편의 시가 되는 이 여백이야말로 시가 가진 가장 매력적인 ‘열림’의 힘이다. 시는 궁극적으로 그것을 읽는 독자에게서 완성되는 것이지, 어떻게 이해해야 한다는 정답이 없다. 행간의 상상력이 보여주는 낯선 세상을 ‘그냥’ 여행하면 되는 거다. 시집은 그 낯선 언어 때문에 감각과 영혼의 상태를 청춘으로 유지해준다. 시언어의 낯섦을 불편해하지 않고 즐길 수 있게 되면 일상의 많은 순간들이 새롭게 태어난다. 여행자의 가방에 시집이 어울리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독자에겐 다행히도 시집 한 권은 여전히 커피 한두 잔 값이다.
김선우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