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우리 균도 - 느리게 자라는 아이>
이진섭 지음, 후마니타스, 2015
<우리 균도 - 느리게 자라는 아이>
이진섭 지음, 후마니타스, 2015
어떤 페미니스트들이 나를 “무식, 사이비, 제도권”, “교수도 아닌 사람이 여성주의 대표로 행세한다”고 비판했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교수님’들의 제자인데. 어쨌든 딱히 틀린 말도 아닌 듯하여 필자 소개를 ‘평화학 연구자’로 바꾸었다. 이번에는 “변절자, 기회주의자”가 날아왔다. 애초부터 훼손할 순절(純節)도, ‘~주의자’를 자칭한 적도 없는데…. 아, 뭐라고 하지? 동생이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넌 귀가 얇아서 탈이야.”
당분간만이라도 크게 틀리지 않을 자기소개를 고민하다 보니, ‘건강 약자’가 적합한 듯했다. 나는 오랫동안 질병을 앓고 있고 장애도 있다. 몸 이슈에 관심이 많아서 장애 관련 신간은 거의 구입하는 편이다. 이 책은 2011년 “발달장애 1급 자폐아” 이균도씨와 그의 아버지 이진섭씨가 부산시청을 출발해 서울 보신각에 이르기까지의 투쟁 기록이다. “KTX를 타니 두 시간 반. 그 거리를 39박 40일로 느리게 살았다.”(120쪽) 20대 중반의 청년이 왜 자폐‘아’일까. 자폐증 환자는 모두 ‘아이’에 머문다는 생각. 이 책이 널리 읽히기를 희망한다. 장애인 가족, 발달장애, 자폐에 대한 선입견을 내려놓고 읽는다면 훌륭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 단어들은 고정된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독서에 실패하기 쉽다.
장애의 90% 이상은 후천적 이유로 발생한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이균도씨 가족은 아버지는 직장암, 어머니는 갑상샘암, 외할머니는 위암을 앓았다. 이들은 소송을 통해 고리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피해 개연성을 인정받았다.(구자성, 215쪽) 이 정도면 후천적 사고가 아니라 국가폭력이다.
부자가 길을 나서자 사람들이 쳐다본다. 경적과 모래바람은 다른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쏟아지는 환호와 갑작스런 시선(“균도와 세상 걷기 경북도 같이합니다”), 아들의 배낭끈을 놓쳐서는 안 되는 아버지의 평생은 길과 삶이 분리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삶과 실제 길은 다르다. 길을 인생에 비유하는 것은 모든 이에게 길이 있다는 착각을 준다. 가지 않은 길, 걸어온 길, 여정, 우회, 마이 웨이, 길을 잃다…. 정도(正道)는 바름을 의미하지만 ‘정도’(定道), ‘정상’ 개념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니 그의 이름처럼 균도(均道)가 맞다. 정도 때문에 장애가 문제가 된 것이다. 사는 길(‘살 길’이 아니다)이 없는, 길이 막힌 사람에게 길은 비유가 될 수 없다.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하면 길에 나서는 것 자체가 삶의 목표가 된다. 길은 수단, 방법, 도구를 뜻하기도 하지만 목적이 다른 이에게는 더욱 비현실적인 비유다. 비유는 종종 비윤리적이다. 수전 손태그는 자신의 암이 다른 것으로 은유될 때, 사회적 낙인과 실제 고통이 무시되는 현실을 썼다.
이처럼 인생=길이라는 통념은 다양한 경험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 상투성의 원단,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은 단지 선택하지 ‘않은’ 삶일 뿐이다. 선택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갈 수 없는 길이고 이미 삶이 아니다. 외출 준비에 한나절 이상 걸리는 장애인, 여성이 피하는 밤거리, 치매와 광장공포증 환자에게 길은 도전, 일상의 정치다. 비장애인의 걷기, 걷기 투쟁이 많지만 이균도씨 부자에게 길은 그들과 같지 않다. 이 책은 길의 의미가 사람마다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하게 한다.
장애인이나 아픈 사람, 화상 환자가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나라처럼 거리에서 장애인을 보기 힘든 사회도 드물 것이다. 구조적, 심리적으로 ‘총을 든 간수’가 곳곳에 완강하다. 성형 시술이 성별 이슈로 한정되는 것은 부정의하다. 몸의 외형과 기능 문제로 고통받는 장애인은 외모주의의 가장 큰 이해집단이다. 성형은 장애인 인권과 분야별 의료서비스 편중, 공중보건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길과 집이 메타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길이 안전하지 않으면 집도 안전하지 않다. 가정폭력은 ‘험한 세상’에 나갈 수 없다는 두려움을 볼모로 작동한다. 안전한 집과 안전한 길. 장애인 복지?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조건일 뿐이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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