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소설가
초중고등학교는 대학 가기 위해, 대학은 취직하기 위해 존재하는 한국에서 ‘교육’을 말하는 일은 막막하다. 대학이 시장논리에 노골적으로 포섭되면서 진리·학문 탐구, 인간의 성숙·성찰, 이런 말들을 대학과 결부시키는 일이 낯뜨거워진 지 오래다. “군에서 제대해 복학하니 다니던 학과가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흔해진 세상. 자본 앞에 ‘알아서 기는’ 대학 행정은 ‘우리는 취업학원이다’라고 암암리에 선전하고 기업과 연계해 ‘취업률 높은 대학’을 증명해 보이려고 저마다 난리다. 기업의 입맛에 따라 대학을 구조 조정하고 취업률을 지표로 학과를 통폐합하는 걸 ‘합리’로 받아들이는 여기. 영어영문학과처럼 영어 관련 과목이 아닌 법학, 상경, 국문, 역사, 예체능 등의 전공 수업을 영어로 하고 과제물도 영어로 내라고 하는 해괴한 여기. ‘국어문법론’ ‘국어학강독’ ‘한국선사고고학’ ‘한국근현대사’를 영어로 강의하고 듣고 과제를 제출하라는 어이없는 사태의 발로 역시 기업이다. 기업이 영어 실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취업시험 공부 때문에 학과 공부 할 시간이 없다’는 말이 당연하게 상용되는 파탄 난 ‘상아탑’. 그러나 보라. 자본과 기업이 흔히 추앙하는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모든 기술력을 주더라도 소크라테스와 한나절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과대 포장된 면이 있는 인물이긴 해도 이것은 분명 잡스의 진심이다. 취업률 기여도 0%에 가까운 철학과 인문학적 질문이 잡스를 잡스이게 한 원동력임을 한국의 대학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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