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경쟁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어쩔 수 없다’는 패배주의야말로 이 막돼먹은 세상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봉쇄한다. 모든 게 경쟁인 사회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 조금씩이라도 더 나은 경쟁규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용기, 나아가 경쟁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지도 모른다. 예술이 향유자에게 좋은 것은 예술향유에서는 경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저마다의 빛나는 개성이 존재할 뿐 좋은 예술에 우열은 없다. 앞서 산 좋은 예술가들이 저마다 단독자로 치러낸 삶이라는 전쟁, 그 속에서 직조해낸 고독하고 아름다운 예술의 정수들이 오늘의 삶을 견디는 위로와 힘이 되어준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의 소설 <지금이 아니면 언제?>의 주인공은 이런 말을 한다. “난 책 없는 빨치산 배낭은 실탄 없는 총이나 조종사 없는 전투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네.” 빨치산 배낭 속의 책이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상황에 놓일지라도 단독자로서의 자신을 대면하고 성찰할 수 있기 위한 긴밀하고 유용한 도구가 아닐까. 책을 읽는 일에는 경쟁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책을 통해 만나는 타인의 삶은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사유의 우물이다. 책과 예술의 지혜로운 향유는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도와준다. 이어지는 프리모 레비의 말은 이렇다. “책은 읽고 난 다음엔 반드시 덮게. 모든 길은 책 바깥에 있으니까.”
김선우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