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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사랑

등록 2015-04-03 19:48수정 2015-04-07 11:24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법구경(法句經)>
김달진 옮기고 풀이함(譯解), 현암사, 1965
내가 어떻게 <법구경>(法句經)을 온전히 전할 수 있겠는가.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 “간단한 말 속에 불교의 요긴한 뜻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그 가르침이 아주 실제적이어서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종교의 궁극은 윤리와 도덕이 아니지만 불교의 도의를 찾을 수 있고, 성립된 연대가 가장 오래이므로 원시불교의 면목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다.” 서기 1세기 전, 먼 곳에서 만들어진 책 내용이 오늘날 일상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 놀랍다.

이 글의 출전은 현암사에서 나온 1965년 초판, 1981년 26쇄. <법구경>의 작자는 ‘서가모니’지만(출간 당시 한글 표기), 인도의 승려 ‘법구’(法救)가 엮었고 한문으로 번역한 이는 오나라 때 사람 ‘유기난’(維祇難)이다.

현암사 판은 한문-한글 번역-번역자 김달진의 소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른 <법구경>과 달리 흥미로운 점이 있다. 불교 문학을 전공한 김달진의 해석이다. 당대의 언어, 우리말이어서일까. 나는 원문보다 좋았다. 그의 표현으로는 소감, 촌평, 산해(散解), 풍(諷), 송(頌). 쏟아지는 말씀들을 급하게 주워 두서없이 적어본다. “원수를 사랑하라? 그러나 우리에게는 사랑해야 할 원수도 없다. (공부에 관한 글에서) 어둑거리는 인생의 변두리를 하염없이 거니는 그 여윈 마음의 조바심. 사람의 속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거리의 사람들의 의젓한 걸음걸이는 눈물겨운 희극이다. 연애에도 천재가 필요한가? 연애를 양심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 양심을 가지고 연애를 하는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내 소견을 더하면, 가장 성숙한 사람이다.) 지옥을 통과해야 천국에 이른다. 우리는 모든 것을 전유(專有)하려는 욕구를 가졌지만 동시에 행복까지도 남에게 나눠주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졌다. 여자를 여자로, 꿈으로 창조하는 것은 남성의 정욕이다. 견성(見性)이란 ‘낡은 진리를 독창적으로 달득(達得)함’이 아닐까….”(총 450쪽) 어느 문장도 허술하지 않다.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을 뜻하는 아라한(阿羅漢)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촌락에 있어서나, 숲 속에 있어서나, 평야에 있어서나, 고원(高原)에 있어서나, 저 ‘아라한’이 지나가는 곳, 누가 그 은혜를 받지 않으리(在聚在野, 平野高岸, 應眞所過, 莫不蒙祐)” 이어지는 김달진의 단상, “내 몸을 완전히 기댈 만한 든든한 벽을 가지고 싶다. 참마음으로 나를 안아주는 크고 안전한 가슴을 가지고 싶다. 나를 속이는 내 마음의 괴로움을 숨김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랑을 가지고 싶다”.(원문 그대로, 100쪽)

사랑의 뜻은 광활하지 않다. 사랑은 말하고 싶음, 말할 수 있음이다. 고통을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 말할 수 있음과 없음의 기준은 사회적으로 결정된다. ‘적’을 위해 나를 위해 감출 수밖에 없는, 그래서 가해자를 보호하게 되는 그런 종류의 괴로움이 있다. 이런 고통은 낫지 않는다. 최근 내 주변에 이런 사건이 여럿 있었다. 당사자도 아닌데 내가 더 망가졌다. 외양은 시국 사건이지만 내 생각엔 원인도 사랑이요, 해결책도 사랑이다. 지혈되지 않는 응급하면서도 오래갈 상처에는 아라한의 사랑보다 당장의 사랑이 필요하다. 하긴, “아라한의 은혜”도 아무에게나 비추겠는가.

나의 바닥을 드러낼 수 있는 상대. 아무리 세게 부딪혀도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벽, 나도 믿기 어려운 경험을 당연한 듯 믿어주는 사람, 내 안의 고통을 비워줄 수 있는 사람. (내가 이런 표현을 쓸 줄 몰랐지만) ‘진정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이 필요한 시간이 있다. 이 사랑은 말을 들어주는 것이 첫째다. 상대방의 경험에 대한 수용력, 호기심을 갖지 않는 예의, 취약한 상대방을 조종하거나 동정하지 않는 사랑. 깊고 신중한 배려 속에 나를 넣어주는 사랑이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이런 사랑을 받으면 나도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갈증과 망상 속을 헤매다가 옛 동아시아 현자가 생각났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제발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주십시오” 간청했다. 그가 말하길 “스스로 지도자가 되십시오”. 맞다. 사랑을 구하는 것보다 행하는 길이 빠르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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