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소설가
세계가 극찬하는 백남준의 예술을 나는 잘 모른다. 다만 나를 분명하게 흔들어놓은 작품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티브이(TV)부처’다. 1974년 뉴욕에서 처음 전시된 뒤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여러 곳에서 전시되었다. 작품의 기본 구성은 이렇다. 직사각형 보조책상이 있고 책상 양끝에 티브이 한 대와 불상 하나가 놓여 있다. 티브이 뒤에 폐회로카메라가 있고 그 카메라가 불상을 실시간으로 찍어 티브이 모니터에 비춘다. 맞은편에 앉은 불상이 티브이 모니터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응시한다! 책상 이편과 저편─ 티브이와 부처 사이 텅 빈 공간 위에 나는 흰 종이 한 장을 펼치고 시를 쓰고 싶었다. 그렇게 백남준이 처음으로 나를 자극했다. 동양과 서양, 시간과 공간, 영원과 순간, 물질과 정신, 실재와 이미지… 손쉽게 구분해 사용하는 개념들이 실은 불일불이(不一不二)함을 참으로 예리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책상 위 부처와 티브이 속 부처, 그들의 불일불이함은 내게 ‘할애’(割愛)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했다. ‘시간, 돈, 공간 따위를 아깝게 여기지 않고 선뜻 내어 줌’이라는 뜻의 이 단어에 사용된 한자는 사랑 애(愛)자다. 사랑을 나누어주다! 흔히 사무적으로 쓰이는 ‘할애하다’는 말이 본래 이토록 서정적인 말이었던 거다. 공간과 시간을 서로에게 할애한 존재들은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사랑의 자장 속에 있다. 당신과 나는 서로의 맞은편에서 실시간으로 떠오른다. 당신을 위해 할애하는 내 시간은 사랑을 나누어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시간이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