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리’에 그다지 관심 없는 이유는 문명화 덜 된 내 미각 때문일 거다. 현미콩밥, ‘잘 만든’ 김치, 김, 두부, 적당량의 제철 채소와 과일들. 이 정도만 공급되면 나는 거의 외식 욕구 없이 산다. 채소도 삶거나 찌는 것 외에 ‘요리’는 안 한다. 된장에 찍어 먹거나 식초, 올리브유 등을 뿌린 샐러드 정도이거나 간단히 끓이는 수프로 먹는다. 무엇을 먹든 재료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맛이 느껴져야 좋다. 유기농 채소를 먹을 때 일석이조로 좋은 것은 음식물쓰레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것. 양파도 파도 고구마도 과일도 가능한 한 버리는 부분 없이 껍질째 몽땅 쓴다. 땅살림을 실천하는 농부님들에 대한 내 식대로의 빚 갚음 형식이기도 하다. 내 식탁을 보고 이렇게 먹고도 만족이 되느냐고 묻는 친구들이 있다. 만족이 된다. 요리 만드느라 바지런을 떨기엔 나는 너무 게으르니 야생성 미각은 내겐 안성맞춤인 셈. ‘요리’ 먹고 싶다는 욕구가 거의 안 생기는 대신 구체적인 재료의 이름이나 색깔이 떠오른다. 시금치를, 당근을, 단호박을 먹고 싶다라든가 보라색이, 붉은색이, 노란색이 먹고 싶다라든가. 요리된 음식이 아니라 재료가 가진 맛, 향, 색이 떠오르면서 “먹고 싶다!”고 입맛을 다시는 이런 체질에 적합한 부업이 ‘채소 맛 감별사’라던데. 하하. 시인의 부업치곤 나쁘지 않다. 물론 이런저런 이유로 가끔 밖에서 외식할 땐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기’가 기본이다. 야생밥상만 즐기다가 가끔 문명밥상 앞에 가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
김선우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