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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오늘도 모래성 쌓기

등록 2015-03-16 18:40


김선우 시인·소설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어린 시절을 바닷가에서 보낸 사람이라면 모래성 쌓기의 추억이 있을 것이다. 동해를 옆에 두고 자란 나도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고 조개껍질을 주우며 보낸 아득한 추억들이 있다. 모래성 쌓기는 모래성 허물기다. 열심히 쌓고 나면 파도가 밀려와 모래성을 허물어뜨린다. 어쩌면 어린 자아 속에 세상에서 부대껴야 할 고난들에 대한 정서적 맷집 같은 게 그때 길러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래성 쌓기에서 나도 모르게 배운 것은 무너지는 것, 실패하는 것일 테니까. 게다가 무너진다는 것이 실은 그리 두렵고 회피할 것만은 아니라는 감각도 그 바닷가에서 배운 것일 테다. 모래성을 쌓아놓고 은근히 파도를 기다리곤 했으니까. 이번엔 어떤 파도가 밀려와 모래성을 어느 쪽부터 허물어뜨릴지가 매번 궁금했던 것이다. 쌓기에 몰입의 즐거움이 있다면 무너지기에는 ‘해체의 통쾌함’ 같은 게 있다. 바닥까지 비워 새로 채운다는 것. 거기에서 살아 있는 한 다 괜찮다, 하는 낙관이 길러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문장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과정이 글쟁이가 종일 하는 일이다. 공들여 쓴 문장을 지워버리고 다시 백지가 된 모니터와 대면하는 순간의 긴장감과 스릴이 유년의 모래성 쌓기와 다르지 않다. 애써 쌓은 모래성이 스르르 무너지면서 내 발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갈 때의 촉감, 그때 터져 나오던 환호성을 떠올리며 나도 몰래 미소 짓는다. 뭐였을까, 그 환호성의 의미는? 무너졌으니 다시 쌓는 일을 ‘새롭게’ 시작해야겠군! (아마도 그런?)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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