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노동하며 살아간다. 노동을 미화할 필요도 그 반대일 필요도 없다. 살아 있어야 노동할 수 있으니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데 동의한다면, ‘노동하는 인간’은 존재의 기본증명이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이분법은 무의미하다. 글 쓰는 작가는 ‘정신노동자’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글쓰기노동 역시 육체로부터 말미암는다. 생각은 머리로 하지만 쓰기는 책상 앞에서 몸으로 한다. 시 쓰기는 소설에 비해 육체노동의 강도가 훨씬 덜한 대신 일종의 ‘심리적, 정신적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좀 특이한 노동이지만 이 역시 육체노동이긴 마찬가지다. ‘소설은 엉덩이 힘으로 쓴다’는 말이 있듯이 장편소설 하나를 탈고하고 나면 엉덩이 굳은살 박이고 어깨 근육 뭉치고 손목이나 손가락 관절에 무리가 오기 예사다. 책상은 내 육체의 진을 빼는 노동 현장이며 한 줄 문장도 쓰지 못할 때에도 서너 시간씩 앉아 노트북 모니터를 응시해야 하는 인고의 제단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두어 주 쉬다 보면 얼른 책상으로 가고 싶어지고, 한 달 이상 책상과 멀어져 있으면 어딘지 불안하고 행복하지 않은 상태가 되어버린다는 것. 마음에 드는 단 몇 줄 문장을 얻기 위해 피와 살을 맞바꾸는 이문 적은 노동을 하는 직업이 작가라는 글 노동자이다. ‘정신노동자’라서 더 ‘우아한 노동’을 하는 게 결코 아니다. 종종 전쟁터 같은 책상 앞, 글 쓰는 자의 긍지라면 “개인이 분업에 복종하는 예속적 상태가 사라진”(‘고타강령비판’ 중) 노동임은 분명하다는 것!
김선우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