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남인도의 공동체 오로빌에 머물 때 친하게 지낸 주민이 있었다. 그녀의 파트너는 이탈리아인이었다. 오로빌에선 아내/남편, 이런 소유관념 강한 말보다 파트너라는 말을 선호한다. 사랑해서 함께 지내는, 일종의 솔메이트다. 두 사람은 이탈리아와 오로빌을 오가며 생활했다. 오로빌에서 하는 일이야 명상, 요가, 예술활동, 유기농업 등인데, 나는 그 남자가 이탈리아에서 하는 일이 궁금했다. 그는 로마 근교 숲에서 꿀벌을 치며 산다고 했다. 오호, 명상하는 꿀벌치기라! 시인에게도 퍽 어울리는 부업 같지 않은가. 아담한 숲 근처에 작은 오두막 하나가 떠올랐다. 꽃피는 철에 조그만 전기차 한 대 슬슬 몰고 꽃 따라 다니며 벌통을 놓아둔다. ‘벌들이 일하는 동안’ 근처 마을장터에 나가 꿀을 팔거나 시골분교 아이들에게 시, 소설을 읽어주며 놀다가 해 지면 벌통 거두어 떠나고… 유랑문학극장을 겸해 작은 차 한 대로 꽃 따라 유라시아를 떠돌며 한 몇 년 살아도 좋겠구나.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꿀벌이 줄어들고 있다’는 뉴스를 작년에 접했다. 올해는 어떨까, 주의를 기울이는 중이다. 세계 곡물 생산 30퍼센트 이상이 벌 수분에 의존하므로 벌의 감소는 인류가 직면할 위기를 알리는 비상등이기도 하다. 기후변화와 농장·과수원에서 사용하는 살충제·농약 영향이 크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지구에서 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내로 멸종”한다고 경고했다. 살충제 범벅인 꽃 속에서 죽은 벌의 눈동자가 인간을 안쓰럽게 들여다보는 것 같다.
김선우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