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소설가
십여년 전 쓴 시 중에 ‘완경’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폐경이라니, 엄마, 완경이야, 완경!” 이런 시를 쓰게 된 것은 많은 여성들이 ‘폐경기우울증’을 겪는 게 안타까워서였다. 여성의 일생에서 매우 중요한 신체 변화기 관문에서 부딪히는 ‘말’에 큰 문제가 있다고 나는 느낀다. 폐업, 폐광, 폐쇄처럼 폐경은 결락의 느낌으로 각인된다. 도태된 폐쇄의 느낌은 우울증을 부추기기 쉽다. 월경 정지 후 평균 3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인생 후반기를 부정적 느낌으로 출발하는 셈이다. 어감이 부정적이기도 하거니와 과학적으로도 폐경보다 완경이 훨씬 더 적절하다. 임신, 출산에 관한 지나친 신비화는 모성애 신화만큼 여성을 부자유하게 한다. 임신과 출산을 축복이라 여기는 것은 마음의 일이지 몸의 일은 아니다. 몹시 힘든 육체의 일이지만 해내는 것일 뿐이다.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평생 발현시킬 난포를 가지고 태어난다. 초경 후 450개 안팎의 난자를 배란하고 나면 완경에 이른다. 평생에 걸친 일종의 숙제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 시기 자신을 ‘자유롭다’고 느끼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상실’로 받아들이는 여성이 있다. 전자는 이를 완경으로, 후자는 폐경으로 받아들였을 확률이 높다. 원시문화에서 완경기 여성은 지혜의 피를 더 이상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보유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더욱 강력한 힘을 지닌다고 여겼고 나이 든 여성들은 부족의 일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딸들에겐 따스한 초경파티를, 그보다 더 멋진 완경파티를 열자.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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