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어린이대공원 사육사 사망사고 경위와 재발 방지 대책에 관한 동물원 쪽 브리핑을 보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이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왜 동물원을 가져야 하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비롯해 동물 다큐멘터리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는데, 아이들 학습용으로? 살아 있는 동물과의 교감을 위해? 글쎄다. 살아 있는 동물과 만나는 첫 순간이 철창우리에 갇힌 동물의 맥없는 걸음과 울음일 때 그로부터 어떤 정서적 교감을 얻을까. 학대받으며 훈련된 동물 쇼를 관람할 때 동물원이 흔히 표방하는 생명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을까. 존재의 귀함과 짠함을 마음으로 느끼고 서로 보살피는 일이 교감이다. 살아 있는 동물과의 교감은 함께 사는 반려동물을 책임 있고 따뜻하게 보살피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소중한 생명으로서의 평등한 상호관계성이 아니라 ‘우리에 가두어놓은 존재’와 ‘우리 바깥에서 그들을 관찰하는 존재’로 생명 간 경계를 폭력적으로 구획하는 동물원. 이런 시설은 분명 ‘동물감옥’이건만 ‘동물원’이라는 말은 ‘감옥’이라는 본질을 은폐한다. 동물에 대한 감금전시가 아닌 이른바 ‘동물복지’가 제대로 구현된 동물원이 되려면 관람객이 동물 보기 어려울 만큼 넓은 우리와 숲 등의 자연조건을 갖춰야 한다. 한국에서 그런 동물원을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지금보다 더 나은 시설과 관리를 한다 해도 동물원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동물원 없는 나라’를 상상해 봐도 좋지 않겠나.
김선우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