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배우는 조카가 글씨를 써 보여줬다. ‘바닷물은 흐물흐물’이란다. 그래그래! 물은 지구상 최고의 용매지. 무엇이든 섞고 녹이려면 말랑말랑, 흐물흐물해야지. 그래야 서로 물들지. 엄지손가락을 치켜 칭찬해줬더니 조카는 의기양양이다. 청도에 사는 과수원집 아이가 ‘감말랭이 꼬득꼬득’이라고 쓴 것을 본 적 있다. 타고난 시인인 아이들은 자연물에 대한 부사, 형용사 구사에서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어떤 이들은 한국어의 부사, 형용사 과잉이 단점이라 말하기도 하고 가능한 한 명사와 동사만으로 문장을 만드는 것이 경쟁력 있다고도 한다. 외국어 번역 시 한국어의 형용사, 부사는 그 어감을 살려 번역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언어 경쟁력’이라는 게 왜 필요한지도 의문이지만 한국어가 가진 좋은 점을 억압해 얻는 경쟁력이라면 글쎄다. 나는 한국어의 복잡한 존대법은 좀 더 단순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풍부한 부사, 형용사는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그 언어를 모어 혹은 모국어 삼은 당대 언중 속에서 생생한 활기를 지니면 되는 것이다. 붉음이나 푸름 속에 얼마나 다채로운 서로 다른 붉음과 푸름이 있는지 한국어의 색채어 변주는 유려하게 보여준다. 표현 언어가 다채로울 때 자연의 다채로움과 차이들이 몸/감각으로 훨씬 잘 소통된다. 재밌는 것은 아이들이 느끼고 표현하는 ‘흐물흐물’이나 ‘꼬득꼬득’은 묘사하는 그 물질의 상태에 거의 근접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느끼는 흐물흐물한 바다는 흐물흐물하다!
김선우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