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다닐 때 양초 칠을 해 교실 마루를 반들반들하게 닦는 청소를 하곤 했다. 한달에 한번 이 대청소 시간이 돌아오면 아이들은 집에서 걸레를 하나씩 만들어 가야 했다. 그때마다 나는 늘 엄마와 신경전을 벌였다. 다른 아이들처럼 수건으로 만든 보송보송한 걸레가 좋은데 엄마가 만들어주는 걸레는 늘 더는 입을 수 없이 나달나달해진 낡은 내복 걸레였다. 해지고 보풀이 인 그것들은 네 귀 딱 맞게 두툼한 걸레로 꿰매어져도 아주 오래 입은 내복이라는 표시가 나는 것이어서, 대청소 시간이 얼마나 싫었던지….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에게 청소걸레 하나가 이럴진대 진짜로 ‘밥을 굶는’ 가난이라면 어떻겠는가. 가난이 어린아이들의 마음에 남기는 대부분의 상처는 상대적 빈곤감으로부터 생긴다. 반 친구 모두가 밥을 굶는 것과 나 혼자 밥을 굶는 것은 빈곤의 수준이 같다 해도 어마어마하게 다른 상처로 나타난다.
여당 대표가 “복지가 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이 주는 모욕감은 차치하고라도, 우리가 언제 제대로 복지를 이뤄본 적이 있다고 과잉 운운인가. 이 나라의 현재 ‘복지’ 수준과 시스템은 일가족이 자신의 가난과 무능함을 증명해 보여야 ‘돈’이 나온다. 인간이 빵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님을 현재의 복지정책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모욕과 수치를 감당해야 얻을 수 있는 잔인한 밥이 아니라 한 개인이 자존감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복지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