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의 시인들은 영미 시인들과는 달리 우리와 기질이 많이 닮았다. 제국주의 식민지배를 받은 적 있는 역사 때문일까. 응어리진 뜨거운 심장의 소리, 세찬 혈류, 맨얼굴과 맨손의 진정성 같은 게 있다.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라고 썼던 페루 시인 세사르 바예호도 고통 앞에 선 인간의 맨얼굴을 보여주는 시인이다. 고통을 뜨겁게 끌어안는 자의 당당한 품위와 가슴 벼리는 서글픔이 자욱하다. ‘대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바예호의 유고 시편 12번을 생각하는 아침이다. “전투가 끝나고 한 사람이 죽은 전사에게 다가왔다/ “죽지 마!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러나 죽은 이는 그냥 죽어간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이다. 다음엔 두 사람이 와서 “힘을 내! 다시 살아나!” 말하고 그 뒤로 백, 천, 오십만의 사람이 오고 수백만명이 모여 죽지 말라고 절규해도 “죽은 이는 그냥 죽어간다”. 이 시의 마지막 연은 이렇다. “그러자 전세계 만민이 몰려와 그를 에워쌌다/ 슬픈 시신은 감동이 되어 그들을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맨 처음에 온 사람을 껴안았다. 그리고 걸어갔다.”(‘스페인이여! 나에게서 이 잔을 멀리해다오.’ 중) 맨 처음 그에게 ‘죽지 마! 살자!’라고 가슴으로 절규한 사람. 진심 어린 가슴의 말을 할 수 있는 ‘맨 처음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희망의 단초일 거라는 생각이 지나간다. 그런 첫 사람이 많으면 고통과 죽음의 시간을 가능한 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슬퍼하고 기침하면서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니까.
김선우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