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소설가
‘정색하고 먹는’ 양식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양식’이라고 통칭하되 서양음식 일반이라기보다 귀족들의 식문화를 본 따 식탁에 차려지는 과다한 식기들과 ‘예의범절’에서 나는 허례의 헛헛함을 느낀다. 오랜만에 미용실에 갔다가 온갖 패션잡지들 속의 여성들이 한결같이 ‘귀족적 아름다움’, ‘귀족적 우아함’이라는 표현들로 장식된 것을 본다. 추천 레스토랑, 바로크타입/로코코타입 집 꾸미기, 명품 브랜드 신상품 순례 등등… 저들이 귀족적=우아함이라고 등식화하는 ‘귀족’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많은 문학작품들이 보여주듯 중세 귀족들의 삶은 ‘우아한’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 우아(優雅)는 적절한 위엄, 소박함, 절제된 품위와 연결되는 단어다. 일하지 않는 계급의 공허한 내면을 권력의 거래, 물질, 섹스로 채우려 한 그들의 ‘귀족 문화’ 속에는 음식 중독, 섹스 중독, 의례 중독, 사교 중독 등 온갖 중독이 넘쳐난다. 그런데도 이 현란한 자본주의 시대의 귀족 선망은 ‘자본교’의 선택받은 돈 많은 장로계급이 되고 싶은 발버둥인 걸까. 공허한 내면에 대한 요란한 보상심리일까. 제 손으로 자기 먹을 것을 생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커녕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며 ‘소비중독자’처럼 사는 게 귀족적인 삶이며 ‘여자의 행복’이라고 세뇌하는 총천연색 잡지들. 광고가 팔할을 차지하는 이런 잡지들의 고급 코팅 종이들은 재활용하기도 어려우니 ‘잡지공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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