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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극단적 현실

등록 2015-01-16 19:57수정 2015-01-16 21:30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보다>,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4
오랜 시간 찾아 헤매던 말이 정확하게 표현된 글을 읽을 때 살아있는 기쁨을 느낀다. 김영하의 산문집 <보다>에 그런 글귀가 나온다. 그는 영화 <그래비티>를 보고 우울증에 대해 이렇게 썼다.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나는 철저하게 혼자이며 무가치한 존재다. 어차피 결국 인간은 죽는다. 아무도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울증 환자들은 인간이 혼자라는 것, 죽을 수밖에 없는 가련한 운명이라는 것을 냉철하게 직시한다는 점에서 극단적으로 현실적이다. ‘혼자 죽는’ 고통을 미리 맛보고 있는 그들에게 삶이 이미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이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죽음으로 이 절대 고독을 끝장내고자 한다. … 삶의 고통과 의미 없음에 대한 무서운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94쪽)

이 정확성! 내가 10년 동안 추구한 ‘말씀’이 거기 있었다. 나는 삼사십대, 소위 한창나이에 ‘원래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우울증과 자살 연구(?)에 매달렸다. 이룬 것은 없고, 있던 것은 마저 다 잃었다. 어쨌든 우울과 죽음을 해명하지 않으면 다음 날을 맞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읽고 만나고 앓고 써댔지만, 글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위 구절은 글쓴이만의 능력이다. 그의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짧은 경험에도 넘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 경험과 학식으로 저토록 못 쓰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는 글도 있다. 개인의 능력차는 당연하므로 차치하고, 그 외 어떤 요소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일까. 내 생각에, 그 ‘답’ 역시 저 문장 안에 있다. “극단적 현실”.

몇 년 전 중년의 치매를 다룬 영화 <내일의 기억>을 보았다. 한산한 조조 영화관에 나, 20대로 보이는 커플, 60대 여성들, 세 팀의 관객이 있었다. 나만 빼고 30분도 안 되어 극장을 나갔다. 젊은이들은 “무슨 얘기야?”라며 어이없어했고, 60대 여성들은 “여기까지 와서 치매를 봐야 하냐”며 짜증을 냈다. 덕분에 나 혼자 실컷 감동했다. 치매 소재 영화와 관객의 나이. 자기 현실과 너무 먼 이야기도, 너무 가까운 이야기도 감상을 방해한다. 지식은 중간에서 나온다. 삶이 너무 안락하면 글을 쓸 이유가 없고 너무 고단하면 여력이 없다.

“극단적 현실”의 당사자도 쓰기 어렵다. 현실은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현실적’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누구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발언은 ‘현실’을 운전할 수 있는 ‘현실적인’ 상태인 몇몇 인간만의 특권이다. “극단적 현실”, 즉 현실에서는 도스토옙스키라도 쓰지 못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프리모 레비 같은 이도 있지만, 그는 인간이 어디까지 고통을 견딜 수 있는가를 증명해야 하는 존재로 기대받았고, 결국 자살했다.

글과 글쓴이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는 다정하지 않다. 가까울수록 적대적이다. 외면, 길항, 동일시… 당사자가 자기 현실을 쓰려면 공감받기 어려운, 헤쳐도 헤쳐도 계속 달려드는 칡넝쿨을 넘어야 한다. 타인의 경험은 보이지만 내 경험은 나조차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글은 자기 시각은 없으나 자기 뜻대로 쓰는 소위 ‘객관적인’ 것들이다. 세상사를 전유(專有)하면서 스스로를 인간의 기준이라고 선포하는 글. 기회주의와 보신주의를 중립과 보편, 심지어 정론으로 포장한 것들이다. 거리를 ‘잡는 것’(포지셔닝 혹은 주제파악)은 극도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거리두기와 동일시는 자신을 이동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에서 동일하다. 반면, 자신을 변화시켜야만 가능한 공감과 연대는 어렵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정희진 여성학 강사
정신 질환은 오랫동안 논쟁거리였다. 뇌 기능에 문제가 생긴 신체의 질병이지만, 모든 정신 이상(異狀)은 그 사회가 정의한 정상성의 범주에 따라 저주, 광기, 천재성으로 불려왔다. 그만큼 현실적인 현실은 정의하기 어려운 문제다. 당사자의 글쓰기는 혁명의 꽃.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는 당사자는 오래 살 수 없다. 우울증 환자의 자살이 그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증거하는 것은 현실이 투명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무지와 편견의 보호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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