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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복기

등록 2015-01-09 19:51수정 2015-01-09 21:08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이창호의 부득탐승>, 이창호 지음, 손종수 정리
라이프맵, 2011
나는 바둑을 전혀 모른다. 오목도 이긴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 책은 나오자마자 샀다. 바둑을 ‘좋아한다’. 완벽한 문외한의 뻔뻔스런 독후감이지만, 책의 목적이 “바둑의 저변 확대”이므로 위안 삼는다. 나만한 저변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관전기는 아주 조금 읽을 줄 아는데, 실제로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어’를 내 의미 체제로 번역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영화 <머니 볼>을 보고, 처음 만난 사람과 밤새 야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치와 비슷하다. 바둑이 작은 우주, 인생의 축소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창호와 이 책에 대한 소개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제목 ‘부득탐승’(不得貪勝, 승리를 탐하면 얻지 못한다)은 바둑의 열 가지 계명, 위기십결(圍期十訣) 중 첫번째다.(231쪽) 십결에서 네 항목이 “버리라”는 얘기다. 책은 삶의 교본답게 멘토, 균형, ‘두터움’ 등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생각할 거리가 많다. 내가 나만의 외전(外典)으로 동일시하며 읽은 부분은 성의(誠意)였다. 부끄럽지만, 내 좌우명이 성실이다. 건강이 나빠서 성실할 수 없을 때 가장 괴롭다. 이창호는 할아버지로부터 성의를 배웠다. 무엇인가를 얻으면 반드시 그 이상으로 돌려주고 누구에게나 정성을 다하는 성의는 그의 서명(휘호)이기도 하다.(278쪽) 흔히 성의나 성실은 모범생 기질이나 심지어 답답함으로까지 오해되곤 하는데 그렇지 않다. 만사를 대하는 마음의 자세를 의미한다. 나는 불성실한 사람이 두렵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 관해 말하고 싶어 하지만, 실제 이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말을 앞세우면 작게는 기회를, 크게는 신의를 잃는다.(275쪽)

무엇보다 가장 신비로운 바둑의 세계는 복기(復棋)다. 누구나 실패 후 반성과 학습에는 시간이 걸린다. 아니,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인생이 대부분이다. 학창시절 틀린 시험 문제를 다시 보는 것도 괴로운데, 프로기사들은 대국이 끝난 직후 복기를 둔다. “보이지 않는 창칼”을 오간 상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 속에서 다시 배우는 것이다.

“프로 대국의 복기는 대단히 중요하다. 주요 국면의 수법과 반면 운영, 심지어 전략의 발상까지도 되짚어 분석, 검토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승자와 패자에게 모두 진일보하는 계기가 된다. 복기는 패자에게 상처를 헤집는 것과 같은 고통을 주지만 진정한 프로라면 복기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다 적극적으로 복기를 주도한다. 복기는 대국 전체를 되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이며, 유일하게 패자가 승자보다 더 많은 것을 거둘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194쪽) 나는 바둑의 복기가 스포츠, 예술, 학문 등 모든 분야를 통틀어 호모 파베르의 가장 ‘우수한’ 인성이라고 생각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인간은 드물다. 우리 사회가 그렇다. 사람들은 적당한 마무리, 비판, 책임 추궁을 ‘복기’와 혼동한다.

나는 늘 내 문제가 궁금하고 그로 인해 생성되는 ‘삶의 화학’에 골몰하는 편이다. 내게 인생의 절정, 결정적 순간은 패배 후의 복기다.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때, 혼돈과 의문의 시간에 바로 복기할 수 있다면! 그 깨달음의 절실함과 기쁨을 어디에 비교할까. 집약된 배움, 농축된 시간. 바둑의 복기는 요다 노리모토 9단의 휘호처럼 “이치고이치에”(一期一會, 다시 오지 않을 단 한번의 기회)일지 모르지만, 삶은 복기의 연속이다. 그래야 한다. 매 순간이 대국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복기는 트라우마, 집착, 후회를 가져온다. 지나간 일을 제대로 해석하는 것.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정희진 여성학 강사
끝으로 이창호의 두 스승 이야기. 조훈현 9단의 ‘장미’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는 24년간 하루 3~5갑씩 3만갑 이상 피웠으나 단번에 끊고 등산을 시작했다. 조치훈 9단은 1986년 일본에서 기성 방어전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전치 12주의 부상을 입는다. 오른팔만 움직이는 상태에서 ‘휠체어 대국’을 치렀다. 언론은 “영웅의 투혼”으로 보도했지만 실제로는 “바둑 인생이 끝날까봐 불안해서” 스스로 대국을 서둘렀다고 한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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