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스물한 통의 역사 진정서>
고길섶 지음, 앨피, 2005
<스물한 통의 역사 진정서>
고길섶 지음, 앨피, 2005
국가보안법은 사법적 장치를 넘은 지 오래다. 범법 행위 처벌은 물론 머릿속 생각을 지배하는 무의식의 조종자다. 그것은 국민 개개인의 자기 검열과 사회적 시선을 지도한다. ‘막걸리 보안법’이 가장 유명한 사례다. 군사 정권 시절, 술자리 대화가 신고되어 구속된 서민들이 비일비재했다. “세상이 한번 뒤집어졌으면 좋겠다, 소련 우주 과학이 미국보다 앞섰다, 김일성 만세!” 등 주사(?) 때문이었다. ‘송아지 보안법’도 있었다. 1964년 대전 방송국의 방송 대본이 문제였는데 당시 검사의 기소 요지가 흥미롭다. “송아지를 애지중지한 가난한 농촌 가정이 있었는데 자본가가 하찮은 유희욕과 즉흥적 기분으로 송아지를 잔인하게 수탈하는 장면을 묘사하여 자본주의의 모순을 제시했다”는 것이다.(박원순, <국가보안법연구 2>, 72쪽) 검사도 자본주의의 모순을 잘 알았던 모양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1998년은 제주 4·3 사건이 발발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50년 만에 제주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아이고 사건’도 막걸리 보안법만큼이나 회자되었던 현대사의 비극인데 문화연구자 고길섶이 기록했다.(참고로 <4·3은 말한다 1~5>는 대한민국 국민의 필독서다!)
1949년 1월17일 아침, 제주도 구좌읍 세화리에 주둔한 중대 병력 일부가 함덕으로 가던 중 마을 어귀에서 게릴라의 기습을 받아 군인 2명이 숨졌다. 군인들은 동료 전사자의 시신을 길거리에 버려두고 본부로 돌아갔다. 마을 연장자 여덟명이 시신을 수습하여 함덕리 대대본부로 찾아갔는데, 대대장이 없는 사이 하급 장교들은 시신을 들고 온 노인들을 모두 사살했다. 이후 이들은 가옥 300채를 불태우고 마을을 초토화시킨 다음, 주민 1천명을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이게 했다. 총살이 시작되었다. 뒤늦게 도착한 상급 지휘관의 명령으로 학살은 중단되었지만 400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낳았다.
그로부터 10년 후. ‘아이고 사건’은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어났다. 마을 사람들이 군대에서 죽은 청년의 꽃놀림(객지에서 죽은 이를 위해 상여를 메고 마을을 한 바퀴 도는 것)을 하던 중, 10년 전 그곳 운동장에 이르자 그때 억울하게 죽은 이들이 생각나 감정이 북받쳐 대성통곡하였다. 아이고, 아이고 하는 곡소리가 경찰 상부에 보고되었고 이장 등이 붙잡혀 고초를 당했다. ‘아이고 사건’이다.(76~78쪽)
눈물을 금지하는 원리는 같다. 어렸을 적 부모나 교사에게 억울하게 혼났을 때 울면 안 된다. “뭘 잘했다고 울어!” 한 대 더 얻어맞기 십상이다. 때린 사람은 우는 사람이 불편하기 마련이다. 가해자의 논리는 “(나는 가해자가 아닌데) 네가 우니까 내가 가해자가 된 것 같아 기분 나쁘다. 고로 네가 가해자”다. 자기 행동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심지어 동의와 웃음을 강요한다. 아이고 사건은 눈물이 불법을 넘어 체제 위협으로 간주된 예다. 눈물=체제 위협. 눈물은 힘이 세다.
세월호 이후 사람들의 태도는 다양했다. 함께 고통스러워하는 사람,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 “기억하자 그러나 그만 울자, 산 사람은 살아야지” 같은 현실파… “시끄럽다”, “우울하다”고 짜증내는 이도 있다. 문제는 재난 사고에 대처하는 당국이다. 세월호가 단순 교통사고라고 말한 이가 있었다. 이 발언은 비판받았지만 맞는 말이기도 하다. 단순한 교통사고를 정치적 문제로 만든 세력이 누구인가. 바로 교통사고라고 말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진맥진해 있는 유가족을 불순파, 순수파로 나누고 언론 플레이를 했다. 세월호가 여권 핵심부의 비리라는 항간의 소문이 ‘사실’인가 보다.
눈물은 정치적이다. 그래서 ‘아이고 사건’은 어디에나 있다. 여론이 약자에게 동정을 보일 우려가 있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은 걷잡을 수 없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안산 시내에 걸린 노란 리본의 내용은 슬픔보다 진상규명 요구가 많았다. 내가 가장 분노한 문구는 “(생존 학생의) 특례입학 요구는 유가족의 입장이 아닙니다”였다. 유가족이 왜 이런 해명을 해야 하는가. 슬퍼할 시간도 부족할 텐데.
정희진 여성학 강사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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