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소설가
올해 봄 결심한 것이 중고등학교에서 오라고 하면 가능한 한 간다는 거였다. 어느 날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기 때문이다. “기운을 차릴 것/ 기억할 것/ 증언할 것/ 눈앞의 아이들을 위해 작은 풀잎 창이라도 매일 닦을 것” 지금 이 순간 맘껏 행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러 학교에 갈 때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갈피갈피 귀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마흔이 넘자 어느새 나는 교과서에 나오는 시인이 되어 있고,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이란 거의 언제나 아이들의 행복과 무관하다는 것을. 모의 수능시험에 출제된 적 있다는 내 시에 대해 아이들이 심각하게 질문해 올 때, 무안하고 미안했다. 시를 통해 가슴의 소리를 듣기는커녕 어느새 시가 아이들 머리나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닌지. 올해는 유독 수능시험 논란이 많았다. 시험 내용도 그렇지만 학벌사회 서열화의 관문인 이런 시험 시스템 자체가 해체되어야 이 땅의 청소년들이 ‘행복한 학교’를 누릴 수 있다. 점진적 변화의 모색 측면에서 문학시험만큼은 수능시험에서 빼면 어떨까. ‘문학’을 어떻게 시험 볼 수 있나. 한 걸음 더 나가 말한다면, ‘문학교과서’ 자체가 불필요한 것이다. 문학시간엔 청소년들이 시집과 소설책을 ‘책 자체’로 만나야 한다. 최상의 문학시간은 문학작품들이 가득 채워진 학교도서관에 아이들을 풀어놓는 것이다. 그러면 시인·소설가도 살고 아이들도 산다. 문제풀이의 압박 없이 문학작품 안에서 놀 수 있을 때 십대의 감수성은 긴 인생을 살아갈 감정의 근육들을 단련할 것이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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