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소설가
정당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강제해산 당하자 유림인 아버지가 전화해 한마디 하셨다. 세상이 뒤로 가도 한참 뒤로 가는구나. 이런 시국엔 함부로 언행을 하지 말아라. 아버지와 나는 이십년도 더 전에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만난 적이 있다. 전교조 결성 지지 집회를 막으려고 동원된 장학사·교장들 틈에 아버지는 있었고 그 반대편에 나는 있었다. 그 후 놀란 어머니가 다그치셨다. 연좌제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느냐. 너 때문에 공무원인 아버지가 피해 입을 수 있다. 그저 납작 엎드려라…. 그게 언제 적인데 21세기에도 여전히 ‘종북유령’ 타령이다. 이 땅에서 견뎌야 하기에 차마 못 하던 말, 그리하여 문학작품에서나 쓸 수 있던 말, 그 말을 오늘은 할 수밖에 없다. 환멸, 환멸의 시대라고. 나는 통합진보당에 매우 비판적인 사람이지만, 정당의 존립 유무는 유권자가 결정하는 거다. 정당 설립과 활동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주의 핵심이다. 박제당한 민주주의 퀭한 유리 눈. 이 불길한 전조 위에 ‘광기’라고 쓸 수밖에 없는 날. 정치도 법도 개선의 여지가 안 보이는 이 땅의 미래는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답답한 날들이지만,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김수영 ‘눈’) 어둠이 깊을수록 가슴속 불씨를 꺼뜨리지 않아야 한다. 환멸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저마다의 빛을 간직한 채 기침을 하자.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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