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소설가
차고 비는 순환의 여정이 잘 보이는 계절. 수확이 끝난 겨울 밭을 보는 농부의 마음을 생각한다. 겨울 밭은 빈 밭처럼 보일지라도 빈 밭이 아니다. 거기엔 씨앗이 들어 있고 벌레가 살고 있으며 무엇보다 농부의 혼이 있다.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빈 것이 아니다. 귀농해 농사짓는 지인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농사를 지을수록 밭이 옥토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 때, ‘그 흙을 만지는 기분!’을 어찌 설명할까, 라고. 신비롭지 않은가. 겉보기에 비슷해 보여도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해 농작물을 자라게 한 밭과 유기물의 순환을 돕고 자연의 공생 섭리를 존중하며 농사짓는 밭의 속흙이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이! 유기농의 기본에 충실한 지인들은 농한기 겨울에도 ‘더 나은 공생원리’를 연구하느라 바쁘다.
유기농 이야기를 하자니 최근의 ‘이효리 콩’ 해프닝이 떠오른다. 자신이 직접 키운 콩을 마을장터에서 팔면서 ‘유기농’이라고 ‘한글’로 쓴 게 문제가 된 것. 핵심은 ‘관의 인증’ 여부인데, 텃밭에서 수확한 소량의 유기농산물을 마을장터나 집 앞에서 파는 경우에도 관계 법령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선 합리적인 논의가 필요한 것 같다. 그런데 그보다 시급한 건 ‘관의 인증’ 자체에 대한 불신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친환경 인증 시스템’이 정작 정직한 유기농을 하는 농부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니, 인증 운운에 앞서 ‘관의 자성’부터 필요한 것이 아닐까.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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