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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리흐테르의 피아노

등록 2014-12-08 18:44

김선우 시인·소설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피아니스트로 활동할 생각은 없고 이번 한차례만 하겠다는 순회 독주회를 위해 지휘자 정명훈씨가 새로 장만한 ‘뵈젠도르퍼’ 이야기를 듣던 날, 종일 리흐테르를 들었다. 음악이 개인의 영혼에 관여하는 방식에 관해 나에게 가장 좋은 길벗이 되어주는 피아니스트는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와 마리아 주앙 피르스다. 오늘은 특히 리흐테르. 그는 소련의 기라성 같은 연주자들 중 유일하게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당이 주는 모든 혜택에서 제외되고 거처조차 배당받지 못해 스승과 연인의 집을 오가며 지내기도 한 그는 1960년대 이후 서방세계의 열렬한 환호와 칭송을 받은, 지난 세기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 한명이다. “연주를 하는 동안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하든 그건 작품과 관련된 것이지 청중이나 성공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또한 내가 청중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건 작품을 통해서 맺어진 것이다.” 브뤼노 몽생종이 정리한 회고록에서의 고백처럼 그는 작품 외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았고, 온 힘을 다해 건반에 영혼을 실어 나르는 고행자와도 같은 연주로 평생을 살았다. 71살의 나이에 전세계의 찬사를 뒤로한 채 자동차 한대로 러시아 작은 도시와 시골마을을 찾아다니며 마을회관, 성당, 학교 등에서 100회 가까운 연주회를 했던 그는 전용 피아노를 고집하지 않았음은 물론 시골 성당의 낡은 피아노, 심지어 어떤 때엔 조율이 안 된 피아노로도 감동적인 연주를 펼쳤다. ‘진짜 피아노’의 내부는 이토록 치열하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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