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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심서(心書)

등록 2014-12-05 19:58수정 2014-12-05 21:41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목민심서>, 정약용 지음, 이을호 옮김
현암사, 1972
마음. 표현도 번역도 어려운 우리말이다. 마음은 몸의 부위인데(뇌, 심장, 흉부…) 보이지 않는 의미(영혼, 마음 씀, 정신…)에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의 이분 논리가 문제의 근원. 마음 심(心) 자는 사람의 염통 모양을 본뜬 것이지만 실제 마음을 관장하는 기관은 뇌, 의미는 가슴(heart, 심장)으로 통용된다. 흔히 말하는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정약용(1762~1836)과 다산학을 논할 능력이나 의지는 없다. 다만 나는 예전부터 <목민심서>의 ‘심서(心書)’의 의미가 궁금했다. ‘심서’는 정약용이 스스로 평한 3대 저작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처럼 일반적인 책 이름에 어울리는 글자가 아니다. 머리말(自序)에 다산이 밝힌 심서의 이유는 “이 책은 본디 나의 덕을 쌓기 위한 것이지 꼭 목민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목민할 마음만 있지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한 것이다.”(5쪽) 본인의 덕 함양과 유배 상황이 심서의 실질적 사연이라지만 이는 겸손이고, 책 내용이나 그의 생애를 볼 때 이 책은 사랑의 책이다. 마음을 쓴, 마음을 다한, 마음이 담긴 몸으로서의 책. 그래서 심서다.

내가 갖고 있는 <목민심서>는 1972년 현암사에서 나온 것인데 책의 품새가 놀랍다. 표지는 린 채드윅의 작품. 425쪽에 이르는 예민하고 알찬 번역과 해설에다 세로쓰기지만 지면의 3분의 2만 사용하여 눈이 편하다. 구성, 내용, 편집, 디자인 모두 요즘 책 이상이다. 사랑스러운 책이다.

알려진 대로 <목민심서>는 관리의 덕목을 주장한다. 부임에서부터 율기(律己, “먼저 그 마음의 자세를”), 봉공(奉公), 애민(愛民), 이호예병형공전(吏戶禮兵刑工典), 진황(賑荒, 재해 구호 정책), 해관(解官, “목민, 그 영광의 결실”)까지 열두 편을 부임6조(赴任六條) 식으로 분류하여 각각 여섯 개 항목씩 모두 72조로 구성되어 있다. “서류 작성은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하여 손수 작성, 부하 직원을 시키지 말라”(113쪽), “돈으로 병역을 면제하는 폐단의 적나라함”(265쪽), “백성이 유임을 청할 때 어찌할 것인가”(395쪽). 이 시대에도 인상적인 구절이 절절하다.

한국 현대사에서 <목민심서>와 가장 충돌하는 대통령은 누구일까. 나는 전두환 전 대통령‘보다’ 이명박, 박근혜 시대라고 생각한다. 이 두 사람은 독특하다. 박정희에서 노무현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은 공과와 집권 과정이 어쨌든 간에 ‘국가 비전’을 선포했고 국민들과 격렬한 상호 작용을 주고받았다. 학살도 탄압도 민생고도 흔했지만 애증과 갈등이 있었다. 국민들 역시 호오가 분명했다.

그런데 이 두 정권은 ‘쿨’하다. 이론적으로 “억압에서 방치로 통치 방식의 변화”라고 진단할 수도 있겠지만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니다. 두 대통령의 직무 수행 스타일은 그 흔한 대의는커녕 직업 정신과도 거리가 멀다. 마치 “이런 것도 한번 해보자”는 식의 개인적 자아실현, ‘코스프레’에 가깝다. 대통령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 놀이를 하는 것 같다. 국민으로 인한 충격이나 상처가 없고 여론도 아우성이든 통곡이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실익 없는 잦은 외유가 그 결정(結晶)이다.

마음이 없는 리더. 그런 리더를 선택하는 사회. 두렵고 심각한 현상이다. 새로운 시대의 징조일지도 모른다. 이미 극소수는 양극화를 넘어 다른 공간에 산다. 그들의 대통령에겐 심서가 필요없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정희진 여성학 강사
대개 관료나 정치인들에게 <목민심서>를 권하는데 그 의미가 바뀌었으면 한다. 마음을 갖추라는 것이다. 마음이 없다? 문자 그대로 말하면 물리적으로는 심장이 없는 죽은 사람이요, 기능상으로 뇌(생각)가 없는 사람이다. 마음이 없으면 죽은 것이다.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불필요한 사람이다.

마음이 강하고 큰 사람은 울림이 있다. 심장 박동이 자기 몸을 넘어 세상에 들린다. 마음이 크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마음이 있다면 보여주었으면 한다. 마음은 실천으로서만 감각할 수 있는 물질이다. 마음이 없는 사람과 마주할 남은 시간, 심란하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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